데탕트
detente
(프랑스어로 '완화'라는 뜻)
국제관계 속에서 대립과 긴장이 완화되어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태 또는 그것을 지향하는 정책.
특히 역사적으로 미국과 소련이 첨예한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평화적 공존을 모색한 정책과 노력을 가리킨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시작된 냉전체제는 1953년 요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고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가 '평화공존'을 표방하면서 해빙기를 맞게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공산권에서는 중·소분쟁이 일어났고 서방측에서는 프랑스가 미국권에서 이탈하는 등 양극체제의 원심분리현상이 일기 시작했으며 서독과 일본의 급성장, 비동맹 제3세계의 대두 등이 겹치면서 국제질서의 다변화를 촉진시켰다. 여기에 영국, 프랑스, 중국이 새로운 핵보유국으로 등장함으로써 핵전력의 확산이 이루어진 것 또한 냉전체제를 변질시킨 주요요인으로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정치구도가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전환되면서 종전의 대결시대는 긴장완화와 화해·협상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국제정치상의 행동유인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실익의 추구로 옮겨져 1967년 6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 닉슨 독트린'을 발표, 데탕트에 임하는 미국의 의지와 행동강령을 내보였고 1972년에는 모스크바와 베이징[北京]을 방문하여 그 의의를 현실화시켰다. 유럽에서는 1970년 8월 소련-서독 불가침 협정, 1971년 9월 4대국 베를린 협정이 체결되었고 1975년 7월 헬싱키에서 개최된 〈유럽 안보협력회의 35개국 정상회담〉에서는 현상인정과 내정불간섭이 선언됨으로써 안정기조는 절정에 이르렀다. 태평양 지역에서는 닉슨의 중공방문에 이어 1972년 9월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의 중공 방문이 실현되어 오랫동안 쌓여왔던 냉전의 잔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화해의 움직임은 도전받기 시작한 미·소의 이익을 현상대로 유지하려는 강대국간의 질서이지 나머지 세계와의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세계적 차원의 보편성은 아니었다. 데탕트 체제의 특징은 미·소 초강대국이 직접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았지만 소련의 사주에 의한 대리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는 점에 있다. 1973년 3월 미군의 베트남 철수 이후 동남아시아의 힘의 공백은 중·소의 분쟁을 더욱 가열, 인도차이나 제국에 중국과 소련을 구심점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관계를 성립시켰으며, 중동전쟁 발발 후 아랍측에 의한 석유무기화 조치는 세계를 심각한 경제적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물론, 각국에 이른바 '자원민족주의'를 촉발시킴으로서 '국익우선'이라는 새로운 국제정치 도의를 탄생시켰다 (→ 색인 : 유류파동). 한편 1955년 4월의 반둥 회의, 1973년 9월의 알제리 비동맹국 정상회담 등으로 비롯된 제3세계의 대두는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로 대표되는 남·북간의 갈등관계를 조성하는 등, 강대국과 약소국, 부국과 빈국, 약소국 상호간의 국지적인 분쟁들은 오히려 증대되어가기만 했다.
1980년대 후반 냉전체제와 데탕트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라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동유럽 공산정권의 잇달은 붕괴에 이어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동·서독이 하나의 독일을 형성하게 되면서 미·소 양진영의 데탕트는 실질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데탕트"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http://members.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4d4101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