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가 家 Maccabees
BC 2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활약한 제사장 가문.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자 안티오코스 4세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해 더럽혀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새로 봉헌했다.
마카베오가의 역사적 배경
마카베오라는 이름은 BC 168~164년 유대 독립전쟁의 영웅 마타시아스의 아들 유다에게 주어진 영예의 호칭이었다. 뒤에 이 이름이 그의 가문, 특히 유다의 아버지 마타시아스와 4형제 요한·시몬·엘르아잘·요나단에게 주어졌다. 이 이름은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에게까지 이어졌는데 그는 형제들이 다 죽고난 뒤 후계자가 되었다. 마카베오라는 호칭의 의미에 대해 일치된 견해는 없으며, 히브리어로 '망치'·'대장장이'·'소화기'(逍火器)라는 뜻이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의 망치'라는 호칭을 받았듯이 유다가 시리아와의 오랜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그에게도 같은 호칭이 붙은 듯하다.
BC 2세기 내내 유대 예루살렘은 이집트와 시리아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시리아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다. 이 두 국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 그 제국이 20여 년에 걸쳐 해체되고 남은 국가들이었다. 안티오코스 4세는 BC 175~164(또는 163)년에 시리아를 통치했으며, '신의 현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피파네스(Epiphanes)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다. 〈다니엘〉의 묘사대로 그는 야심만만한 정복자였는데 그때까지 이집트 영토였던 유대 지방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귀찮고(또 그가 보기에는 이상하고) 배타적이며, '비타협적인' 유대 민족의 종교를 타도하기로 했다. 카스피 해까지 이르는 지역의 여러 종족을 통일하여 광대한 제국을 만들기 위해 그는 하나의 종교를 만들기로 계획했다.
안티오코스가 살아 있을 당시 시리아인들은 그리스 문화에 열성적이었다. 그에게 문화란 바로 '선'(善)의 추구였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의 문화적 식민화과정을 계속하려 했다. 끊임없이 묻고 창조하는 그리스 정신(지금의 과학정신)은 바로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삶에 대한 유대인의 견해는 중동 전역에 퍼져 있던 헬레니즘의 관점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이것 역시 하나의 총체적인 삶의 양식이었으며, 유대인들이 믿는 계시에 따라 사는 것이었다. 그들은 헬레니즘을 자연숭배의 한 형태 내지 여호수아 시대 이후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신앙과 대립되었던 가나안 종교의 정신적인 연속으로 간주했다. 유대인들은 안티오코스가 지중해 연안의 셈족에게 자신을 가나안의 고대신 바알로 섬기도록 강요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 의하면 가나안 신들은 변덕스런 인간 마음속의 분노·증오·욕망·시기·탐욕 등이 신격화된 것에 불과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을 초월적인 하나님 야훼가 선택한 백성이라고 주장했다. 야훼는 사람과는 전적으로 '다른 거룩한' 존재였다. 사람이 신들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으며,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을 밝혀주는 빛'(이사야)으로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었다. 야훼와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가 지니는 의미를 세상에 입증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였다. 이스라엘의 임무는 인간의 힘과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의해서 지배되는 올바른 인간사회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의미있게 하는 것이다.
유대 종교의식 금지
안티오코스는 에피파네스라는 자신의 별칭에 특별히 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만큼 인간인 왕보다 계시종교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유대교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없애기 위해 이스라엘 종교의식을 공격했으며, '질투심 많고' 편협한 신이 제정했다는 이유로 안식일과 전통적인 유대교 축제를 금지시켰다. 또한 모든 제사의식과 모세 율법 낭송을 금지시켰고 율법 필사본들을 찾아서 모두 불태우도록 명령했으며, 할례가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으로부터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여 이를 금지시켰다. 이러한 종교의식 대신 사람들이 모여 연구·학습하여 친교를 즐겼던 김나지아(gymnasia)라는 문화 클럽들을 장려했다. 여러 운동경기를 한 뒤 남녀가 함께 더운물로 목욕을 했으며, 육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도 '선'의 추구로 보았기 때문에 모든 운동경기는 벗은 채로 했다. 그러므로 김나지아에서 운동경기를 할 때 할례받은 유대인은 몸에 있는 할례자국을 감출 수 없었다. BC 168년 마침내 안티오코스는 예루살렘을 침략하고 야훼가 "나의 이름(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냄)이 이곳에 있으리라"(Ⅰ 열왕)고 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혔다.
대제사장 야손의 지도 아래 있던 많은 유대인들은 보편적인 새 조류와 타협하는 쉬운 길을 택했으나, 안티오코스의 불경스런 행동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강력한 저항을 했다. BC 168년말 안티오코스는 다시 예루살렘을 함락하여 약탈하고 불을 지르며 언덕 위에 예루살렘 성전이 내려다보이는 아크라 요새를 세웠고, 심지어 BC 167년 12월 25일 예루살렘 성전을 올림피아의 신 제우스에게 봉헌했다.
유대인의 저항
사제 마타시아스의 고향 모디임(지금은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예루살렘 서북쪽 27㎞)은 저항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의 다섯 아들 요한 가티, 시몬 타시, 유다 마카베오, 엘르아잘 아바란, 요나단 아푸스도 그와 함께 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마타시아스의 증조부에게 아사모나이오스(Asamonaios)라는 성을 붙였으며, 이에 따라 다음 세기 마카베오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왕조에 하스몬(Hasmonea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마타시아스는 새로운 신들에게 드릴 제사를 준비하는 유대인을 공격하고 옆에 있던 왕의 관리를 죽임으로써 저항운동을 부추겼다. 그리고 나서 마타시아스와 그의 가족은 산으로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합류했고 특히 모세의 율법을 신봉하던 신앙심 깊고 엄격한 하시딤 추종자들이 합류했다. 처음에는 안식일에 싸우지 않아 한꺼번에 1,000명이 죽었다. 그러자 마타시아스는 필요하다면 안식일에도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게릴라전은 민족전쟁이자 내전이었으며, 마타시아스는 모든 협력자를 시리아 적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혹독하게 다루었다.
마타시아스가 죽자(BC 166경) 셋째 아들 유다 마카베오가 저항운동의 지도자가 되었고, 그는 첫 전투에서 사마리아의 통치자이자 적장인 아폴로니오스의 칼을 빼앗았다. 또한 그는 조상들의 하나님을 충실히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기도 했으며, 자신을 옛날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이 임명한 신적인 지도자라고 여겼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계승자라는 사명감을 느꼈던 그는 게릴라 작전중에도 전투를 중단하고 사람들을 모아 "깨어 기도하고 토라(하나님이 계시한 모세의 율법)를 낭송하라"고 하곤 했다. 그는 유대 백성들에게 "파라오가 군대를 몰고 우리 조상들을 추격했을 때 우리 조상들이 홍해에서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생각해 보라"(Ⅰ 마카 4:9)고 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여호수아 시대처럼 나팔을 불어서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에 의해 적과 맞서려고 했다. 게다가 여호수아처럼 유다도 잔인해서 당시의 관습에 따라 정복한 도시의 모든 남성들을 멸절시키려 했다. 그의 몇몇 행위들은 소위 '거룩한 전쟁의 규칙들'(Rules for holy war)과 일치하는데 그 규칙들은 〈신명기〉 여기저기에 나타나며, BC 1세기에 쓰인 사해 두루마리 중 하나에 매우 세부적으로 씌어 있다. 이 사해 두루마리에는 '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The War of the Sons of Light Against the Sons of Darkness)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하누카:예루살렘 성전의 재봉헌
BC 164년 12월 안티오코스가 성전을 함락하여 더럽힌 지 3년 만에 유다는 아크라를 제외한 전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정결한 사제들로 하여금 성전을 청소하고 거친 돌로 제단을 새롭게 건립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 성전은 재봉헌되었다. 봉헌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누카(anukka)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유대인이 8일간 거행하는 빛의 축제를 지칭하는 말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유대력 키슬레브 월 25일에 시작되는 이 축제는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와 같거나 혹은 비슷한 시기에 거행된다. 이후 유다는 갈릴리와 트란스요르단 등지에서 전투를 계속했으며 그의 이름은 "온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사이에서도"(Ⅰ 마카 5:63) 큰 존경을 받았다. 시리아인들은 코끼리 등에 나무탑을 세우고 1,000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코끼리를 둘러싸고 전투에 나갔다. BC 163년 유다의 동생 엘르아잘은 코끼리를 칼로 찌른 후 쓰러지는 코끼리에 깔려 죽었다.
BC 164년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죽자 아들 안티오코스 유파톨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왕국을 통치했고, 시리아의 장군 리시아스가 실권을 쥐었다. 이후 다른 지역의 문제를 안고 있던 시리아 장군은 유다와 일종의 평화관계를 유지했고 유대인들은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확보했다. 그러나 곧 전쟁이 다시 시작되어 유다는 도움을 얻기 위해 로마로 사절단을 보냈는데 이는 결국 로마가 유다를 장악하는 첫 걸음이 되었다. 유다는 이후 5년간 전쟁을 더 이끌다가 전투에서 사망했다.
요나단의 계승
유다의 동생이었던 요나단이 장군직을 계승했는데 유다보다 더 유대 민족의 존경을 받았다. 왕 알렉산드로스 발라스(알렉산드로스 에피파네스라고도 알려짐)는 요나단을 '친구'라고 부르며 평화조약을 맺었고, BC 153(또는 152)년 요나단을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하스몬 계통의 대제사장이 생겨났다. 그러나 제사장 가문인 아론의 후손만이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율법 규정 때문에 엄격한 율법 신봉자들은 그로부터 멀어졌다. 이후로 율법 신봉자들은 강력한 반대파를 구성했는데, 후에 가장 보수적인 바리사이파(성문법과 구전 율법에 대한 이들의 해석과 적용은 후기 유대교에서 전통으로 받아들여짐)로 알려졌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아크라는 적의 수중에 있었으며, 요나단은 아크라 요새를 봉쇄하려 했다. 요나단은 배반당해 죽었고, 형 시몬이 그의 뒤를 계승했다. 시몬은 다른 형제들 밑에서 침착하고 충성스럽게 싸워온 타고난 지도자이며, 인격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으며 앞장서서 예루살렘에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하스몬 가문의 2번째 대제사장이었으며 BC 135(또는 BC 134)년경에 암살당했다.
히루카누스 1세의 통치
마타시아스의 5명의 아들은 모두 제명대로 살지 못했고, 후에 히루카누스 1세로 알려진 시몬의 아들 요한이 자리를 계승했다. 그는 BC 104년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이었으며, 그의 통치기간은 길고 혼란스러웠으나 유대 통치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확장시켜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이두매인(사해 남동부에 살았던 고대 에돔족의 후손들) 요새를 함락시켜 이들을 유대교로 개종시켰다. 예수 시대 이두매 왕 헤로데가 유대인인 것도 이 때문이다.
요한 히루카누스의 통치기간은 마카베오가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확고한 유대교 신앙과 애국적인 열정으로 시작했던 이 독립운동은 큰 성공을 거두어 이제는 처음의 강렬했던 열정이 사라져버렸다. 요한은 자신의 할아버지 마타시아스의 바리사이파적 경향을 본받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는 사두가이파가 되었다. 이 파는 오직 성문화된 모세 율법만이 하나님의 계시와 권위를 나타낸다고 보는 상류계급 보수파였다. 대체로 그는 세속적이고 세련된 불가지론자였다. 혁명이 기존체제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G. A. F. Knight 글 | 李吉商 참조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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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가"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http://members.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7m095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