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락·메삭·아벳느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세 친구)
1. 인적 사항
(1) 히브리 이름은 각각 '주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의 하나냐, '주께서 지금 계신다'라는 뜻의 미사엘, '여호와는 돕는 자'라는 뜻의 아사랴(단 1:6)이다.
(2)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의 세 젊은이(단 1:3).
(3) 다니엘의 친구들로서 유다의 왕족 및 귀족에 속한 자들(단 1:3).
(4) 사드락·메삭·아벳느고는 바벨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2. 시대적 배경
이들은 다니엘과 동시대 인물들로서 B.C.605년 제1차 바벨론 유수 때로부터 바벨론 제국을 정복했던 바사 왕 고레스의 통치 원년인 B.C.538년까지 바벨론 제국의 수도 바벨론 시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주요 생애
풀무불 사건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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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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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바벨론 유수시에 포로로 끌려감 |
B.C 605 년 |
단 1:4 |
약 3년 동안 왕궁에서 교육받음 |
B.C.605-602 년 |
단 1:4-7 |
다니엘과 함께 우상의 제물을 거절하고 채식함 |
〃 |
단 1:12-16 |
교육 후 바벨론 왕을 보필함 |
〃 |
단 1:19 |
금신상을 숭배하지 않아 풀무불 속에 던져졌으나 구출됨 |
B.C. 586 년경 |
단 3:1-27 |
풀무불 사건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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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불 사건 후에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함 |
B.C. 586-538년경 |
단 3:30 |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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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 품
(1) 목숨을 걸고 끝까지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불의한 일과는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들(단 3:13-18).
(2) 우상의 제물을 거절함에 있어서 함께 힘을 모아 뜻을 관철시킨 의리의 사나이들.
(3) 하나님은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실 수 있는 분으로 고백하면, 또한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금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할만큼 신실하고 담대한 신앙의 소유자들(단3:17,18).
5. 구속사적 지위
(1)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아 죽음의 처소인 풀무불에 던져졌다가 구원받은 자들(단 3:13-27).
(2) 이들의 풀무불 구원 사건은 대제국인 바벨론에 속한 모든 인간들에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신은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소개하는 계기가 됨(단 3:28).
(3) 하나님이 풀무불 속에서 건지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짐과 동시에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여호와 신앙을 버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통해 성도들이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흔들림 없이 가져야 할 신앙의 正道에 대한 본을 제시한 자들임(단 3:17,18).
6. 평가 및 교훈
(1) 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겪은 풀무불 시험은 성도들이 겪는 '불 시험'(벧전4:12)을 연상시켜 준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 풀무불 시험에서 믿음의 승리를 거두었던 사실은 우리 성도들이 불 시험을 어떠한 신앙 자세로 극복해야 하는가를 교훈해 주고 있다. 이같은 신앙의 연단을 통해 우리 성도들은 실로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고 지금은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벧전4:13).
(2) 유약한 현대의 신앙인들은 조그만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피해 버리려고 하기 일쑤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이러한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은 성도들이 시험 당할 때에 넉넉히 이기는 힘을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한다(단 3:17,18).
(3) 만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각각 떨어져 있었다면 풀무불 가운데서 건짐 받는 위대한 신앙을 소유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신앙은 성도들간의 교제 중에서 더욱 발전하는 것인 바, 이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히 10:25).
(4)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은 마침내 이방 왕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토록 한다(단 3:28).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불신자들마저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한다(마 5:13-16).
(5)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잘못된 신앙의 형태가 기복적 신앙이다. 더 많은 경제적 부를 위해서 십일조를 내고 평안한 내세를 보장받기 위해서 교회를 다닌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복' 얻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소유한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은 이런 자들에게 어떤 것이 바른 신앙의 형태인지에 대한 표본을 제시한다(단3:18). 실로 진정한 복은 이렇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6)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실제로 이 세상에서 세상의 요구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로 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을 가진 자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늘 하나님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경건의 연습을 통해서 이러한 선택 방법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딤전 4:7,8).
7. 핵심 성구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 시리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