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간 론
1. 총 론
2. 인간 타락과 향상 1) 인간 타락 2) 인간 향상
3. 인간 난제와 해결 1) 시국 난제와 해결 2) 사상 난제와 해결 3) 인간 전쟁 난제와 해결 4) 인간 정치 난제와 해결 5) 경제 난제와 해결 6) 마귀 난제와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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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의 주의와 인격 1) 자본주의와 인격 2) 봉건주의와 인격 3) 공산주의와 인격 4) 인본주의와 인격 5) 신비주의와 인격 6) 복음주의와 인격
5. 인간 주권과 생활 1) 경제 주권과 생활 2) 정당 주권과 생활 3) 교회 주권과 생활 4) 시민 주권과 생활 5) 성도 주권과 생활
6. 인간 요구와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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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것은 먼저 시발점을 바로 알고 끝을 바로 아는것을 목적하고 본서를 기록한다. 인간은 조물주 하나님께 피조물로 창조 받을 때에 삼대 요소를 받은 것이다.
강 해 : 이렇게 말하는거야요. 죽어 천당이 인간의 끝이 아니라 이 인간이라는 건 생길 적에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끝을 맺는거냐 그것을 말해 놓은 것입니다. |
1. 몸이 신의 형상을 따라서 모양을 이루었고 그 신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모든 만물은 몸을 위해서 세운 것이니 인간의 몸이 없다면 만물도 필요가 없다. 조물주의 모든 영광은 피조물된 사람의 몸으로써 누리도록 한 것이니 몸은 신과 같이 동거동락 하는 데까지 목적을 두고 창조한 것이다.
강 해 : 사람의 몸을 낼 때에 이것이 하나님 형상인데 어찌해서 우리 사람의 몸을 당신의 형상대로 냈느냐 할 것 같으면 모든 것을 그 몸에게 줄라고... 이 몸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줄 데가 없단 말이야요. 그렇지 않겠어요? 하나님이 제 아무리 무소불능 하시고 완전무결 하시지마는 이 몸이 없다면 줄 데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의 몸을 낼 적에 모든 걸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냈습니다. 사람의 몸이 없다면 이 만물이 소용있습니까 ? 몸이 없다면 생명나무 열매도 필요 없어요. 이 몸이 없다면은 하나님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몸이 없는 신께서는 사람의 몸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상대해서 그 영광을 주기도 하고 그 몸으로 역사하는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기도 하고 이렇게 하려고 해서 사람의 몸을 창조할 때에 사람의 몸을 어떠한 형상으로 낼 것이냐 할 때에 신의 형상, 자기와 상대가 될 수 있는 그런 형상으로 사람을 냈습니다. 그래서 이 몸이라는 건 하나님의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냈다 그말이요. 만일 사람의 몸둥이가 소처럼 생겼다면 받을 수가 있습니까 ? 예 ? 당나귀처럼, 말처럼, 돼지처럼. 그러면 우리가 여기와서 공부해야 뭔 필요가 있습니까 ?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의 몸이라는 건 이, 목, 구, 비, 사지백체 전체가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몸으로 냈습니다. 그래서 이 몸이 귀하다는 거야요. |
2. 머리의 정신작용이다. 동물에겐 이러한 것을 준 것이 아니요 오직 정신작용으로 움직이는 사람에게 지배를 받고 순종할 수 있도록끔만 지은 것이다. 이 정신작용이라는 것은 물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준 것이다. 오늘의 과학발전이라는 것은 여기에 국한된 것이다. 사람이 정신작용이 바로 움직여 질 적에 물체를 바로 이용해서 얼마든지 화려하게 생활할 수 있는 범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강 해 : 정신작용을 사람에게 줄 때는 이거는 하나님이 창조한 그 물건을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줬어요. 사람이 몸만 있고 정신작용이 없다면 하나님이 준 만물을 바로 사용할 수가 없단 말이야요. 그래서 동물에게는 정신작용을 주지 않았지마는 사람에게는 정신작용을 줘서 이것이 활동을 해서 얼마든지 하나님이 준 물질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기능의 범위로 줬단 말이요. 이것이 오늘에 인간과학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이라는 건 정신작용 활동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인력거를 끌고가던 사람이 아폴로를 타고 달나라에 올라가는 것은, 그게 정신작용이거든요. 그게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냈어요. 그 옛날 나무열매만 따 먹던 원숭이는 그냥 있지마는 사람은 처음엔 나무열매를 먹고 살았지마는 점점 발전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라. 그래 사람이 진화해서 사람됐다면 말이 안됩니다. 사람을 낼 적에 벌써 몸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냈고 이 정신작용도 아예 첫번에 낼 때에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냈다 말요. 만일 동물이나 사람이나 같다면 동물도 요즘 자꾸 정신작용이 발전해야지요 ? 동물이 정신작용이 발전합디까 ? 예 ? 해요 ? 못하잖아요 ? 동물원에 가서 짐승 봐요. 몇 백년 전 짐승 다 그 모양이지, 발전 못하지... 사람이라는 건, 그에게 정신작용을 준 것은 만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그 기능으로 주었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건 자꾸 이렇게 정신을 쓰면 발전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 더운 열대지방 사람이 발전 못하는 것은 그 사람들은 집 잘 지을 필요도 없고, 옷 잘 입을 필요도 없고, 만날 더운데서 땀만 질질 나는데, 전부 벌거벗고 다니는 판인데요... 그러니 그 땅의 사람은 발전을 못해요. 사람이라는 건 춥고 괴롭고 정말 이런데 사람이 자꾸 추운걸 피해볼라고, 또한 박토를 가진 사람이 소출 많이 내볼라고, 이런 가운데서 사람이 발전하게 돼 있지 아무 것도 부러운 것이 없이 사는 그 세계에서는 발전하지 못한다 그말입니다. 그건 왜냐? 정신을 쓰지 않으니까 그 매양 본다면 고생 많이하고 가난하게 산 사람이 발전하게 돼 있지, 그리게 잘먹고, 잘입고, 부잣집 아들들이 발전 못합니다. 그 정신이라는 건 어려운 문제를 놓고 어떡하면 될까 ? 하고 자꾸 이렇게 연구할 때에 그게 발전하는 거야요 반드시. 그래 사람은 정신작용이 있습니다. |
3. 생령이다. 이 영이라는 것은 물체를 사용하는 정신작용을 초월하여 조물주 하나님과 상대가 되는 인격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영의 활동을 바로 할때에 신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이 발전한 사람으로서 정신작용이나 몸을 움직일 적에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에 완전을 준것이 아니고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 자격으로 창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향상할 수도 있고 타락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향상을 주기 위해서는 법이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법을 놓고 하나님은 여기에 의하여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 진리의 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진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신께서는 진리를 대적할 수 있는 마귀도 창조했다.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한 동시에 얼마든지 사람에게 진리를 따라서 활동을 못하도록 꾈 수 있는 기능을 준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세운 것은 아무리 간교한 뱀이 꾀어도 진리의 법을 지키면 얼마든지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사랑이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 법을 지키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는 데서부터 현 사회를 이루는 타락의 근본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기록한 것은 타락한 인생으로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을 목적두고 쓴 글이다.
강 해 : 생령인데 생령이라는 건 물질상대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과 상대 할 수 있는 자격이라 그말이요. 그래서 사람의 영이라는 건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 얼마든지 그 영이 발전할 수 있고 법을 안 지키면은 영은 아주 죽고 말아요. 그래서 사람에게 생령을 줄 때에 얼마든지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건 자꾸 하나님과 상대해서 아무리 괴로운 일이 와도, 핍박이 와도, 시험이 와도, 그래도 끝까지 그 말씀대로 살아볼라고 양심을 이렇게 정하면 자꾸 영이 발전합니다. 그때는 영이 자꾸 발전을 해요. 정신작용은 '어떻게 해야 사나?' 하고 물질을 자꾸 연구할 때에 정신작용이 발전하게 돼 있고, 사람은 하나님을 상대해서 말씀대로 살아볼라고 자꾸 애쓸 적에 영이 발전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그 영이 발전할 때에 말씀대로 살아볼라고 애쓰는 동시에 영적으로 능력을 받고, 지혜를 받고, 권세를 받고, 자꾸 온단 말이야요. 자꾸 줘요. 그래서 하나님이 간교한 뱀을 내서 사람을 영적으로 꾀어보게 하는 것은 아무리 영적으로 악령이 꾀여도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그 영에다가 지혜를 주고, 능력을 주고, 권세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몸과 혼, 정신작용과 영인데 이 몸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냈고, 정신작용은 만물을 얼마든지 연구해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냈고, 영은 하나님과 상대해서 하나님의 지혜 총명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그 영으로 냈단 말이야요. 그래서 사람은 이 세 가지가 발전해야 완전한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세 가지를 이렇게 피조받았단 말이야요. |
가장 귀한 것이 인간이요 또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라고 보게 된다. 금일에 모든 인간들이 그 자체의 존귀성과 미(美)의 세계를 자기의 타락한 그 입장에서 찾아 보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의 하나로 보게 된다(엡 2:4~). 왜냐햐면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이 왜 타락했느냐 하는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강 해 : 인간의 타락과 향상인데, 인간은 어떻게 타락했으며 어떻게 향상할 것이냐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단 말이야요. 인간 타락이라는건 이래요. 가장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것이 인간인데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을 적에 여기서 인간은 타락한 거요. 몸으로 타락이요, 정신작용으로 타락이요, 또는 영으로 타락이라 그말이야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향상을 시키는데는 어떻게 향상시킨다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지금 아무리 애써봐도 인간이 무엇이 타락했느냐? 또 어떻게 돼서 타락했느냐? 하는 그 타락의 근본을 모르면은 암만 애써 봤던들 향상을 못하게 돼 있단 말이야요. 그렇지 않겠어요 ? 병든 사람이 무슨 병인지 그걸 알고 병부터 고쳐야 돼요 ? 자꾸 밥만 먹어야 돼요 ? 예 ? 밥만 먹어 됩니까 ? ..... 그와 같은 말이야요. 인간이라는건 어떻게 되므로 무엇이 타락했다는 것, 자기 타락성! 이것을 분명히 아는 그것이 있어야만 향상하게 돼 있는데, 오늘의 인간들은 자기 타락한 그 본질을 모르고 그 입장에서 그냥 뭘 해볼라는 건 어리석은 사람이라 그말이요. |
① 질적인 타락
이것은 사람의 몸에 선악과의 질이 들어온데서 부터이다. 선악과의 질을 받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수치, 공포, 불만, 이것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즉시에 발생했던 것이다(창 3:7-13). 이 때부터 수치스러운 일, 원수에게 떨게 되는 일, 서로 불만을 가지는 일이 있게 된 것이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향상의 가치를 잃고 점점 타락을 피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창 4:1-12).
강 해 : 인간 타락에 있어서는 질적 타락이 있다 그말이요. '질적'이라는 것은 몸의 타락인데, 이건 선악과가 몸에 들어올 때부터 타락한 것, 질의 타락이라요. 그래서 이 몸이 타락하고 나니까 몸에 사망이 왔는데, 그 질의 타락이란 것은... 그 원죄 타락인데요... 이몸의 피, 이것이 타락이 됐어요. 그렇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자꾸 피를 전염해 나오면서 사람이 이렇게 자꾸 타락된 것입니다. 그래 질적 타락이라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데서 온 타락이야요. 타락도 그 질의 타락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자꾸 아이를 낳으면은 그놈에게 하나 배워주지 않아도 그놈이 자꾸 죄를 짓는 것은 그게 벌써 질적으로 타락하여 난 사람이기 때문이라요. 그래 질적 타락이라는 것은 선악과 먹은 '원죄'로 인한 타락! 이것이 질적 타락입니다. |
② 지식의 타락
인간이 자기의 완전한 가치를 찾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로서부터만 가능한 것인데, 하나님의 완전성을 의심한 데서부터가 지식의 흑암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창 3:4-6). 인간의 향상이라는 것은 '조물주는 어떻게 행하시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면 그 지식은 타락을 가져오는 자리를 자동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사 47:10-11).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최고의 가치를 달성하기까지 함께 역사해 주시는 신이시기 때문이다(엡 4:13).
강 해 : 둘째는 지식 타락이요. 인간들의 지식 타락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섭리가 무엇인지... 이것을 모르는 데서 타락이 됩니다. 그래서 이 지식이라는 건 먼저 하나님의 섭리를 바로 아는 지식을 가져야지, 그 지식이 없이 나간다는 건, 암만 오늘의 (발전된) 문화라고 그래도 이건 타락입니다. 그건 왜냐할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매사가 헛수고입니까 ? 헛수고 아닙니까 ? 예 ? 헛수고라요... 세상 사람 하는 게 다 헛수고요 ? 헛수고 아니요 ? 예 ?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서 그들이 일하니까 자기네는 잘하는 것 같지마는 결국 이것은 타락입니다. 그래서 아담, 하와가 첫번에 타락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그 섭리를 의심했단 말이야요. 거기서부터 사람이 이렇게 '지식 타락'이 왔는데... 오늘의 인간들은 심지어 하나님이 없다고까지 하는 이 상태에까지 들어간 것은 타락 중의 타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③ 기능의 타락
인간은 동물 세계에나 국한된 삶 곧 썩어질 양식 하나를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그의 기능의 한계가 아니고, 가장 위대한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활동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가 받은 기능의 범위이다. 이것은 조물주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에 먼지 나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사람에게 기능을 주시어 영원한 세세왕국을 이루기까지 진보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계 22:1-5). 하나님이 인생에게 약속을 세운 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초인간적인 기능을 주어서 역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자기 힘에 의지하고 사는 것은 타락의 생활이다(사 9:7-11).
강 해 : 하나님이 사람을 낼 때에 얼마든지 사람은 기능의 사람으로 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다 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해 볼라는 그 자체는 타락이라 이거요. 알겠습니까 ?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낼 때에 대뜸 완전하게 낸 것이 아니고 당신이 그 사람에게 능력을, 힘을 줘서 그 사람을 쓸라고 사람을 낸건데 사람이 하나님의 기능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인간자력으로 뭐 해볼라는 것은 기능 타락이라 그겁니다. 오늘 가서 여러분들 자, 우리 인간이 하려고 할 것 같으면 매사가 다 실패겠지마는 하나님의 신의 능력을 받아가지고 한다면 실패할까요 ? 실패가 아니란 말이요. 그래서 오늘의 인간들이 전부 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자기 기능으로 자기 힘으로 뭐 해볼라는 것은 그건 타락이야요. 다 허사라 그말입니다. |
④ 종교적인 타락
종교라는 것은 타락한 인생이 향상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들이 질적으로, 지식으로, 기능으로 타락했다 하여도 하나님은 종교를 통하여 다시 근본을 복구하는 동시에 향상을 주자는 것이 종교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종교를 갖되 종교의 본능을 상실하고 탈선된 신앙 노선으로 흐를 때에 오히려 종교는 사람을 망치는 타락을 첨부시키게 되었다(습 1:4-6). 그러므로 아담은 유일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종교를 갖고 인간생활을 개척했던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받아주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목적인 동시에 그 제사를 통하여 고쳐지는 일, 새로워지는 일, 완전한 의(義)의 열매를 맺는 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 제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창 4:4, 롬 12:1-2). 그러나 인간들이 종교를 악용하여 자기의 죄의 질에 따라 소욕을 채우려 할 때에 오히려 종교는 탈선된 우상숭배의 장이 되므로 말미암아 더 큰 화를 받게 되는 것이 종말의 심판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사 66:3-6).
강 해 : 종교적인 타락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이 질적으로, 지식으로, 기능으로 타락한 이 인생을 향상시킬라고 해서 종교를 준 것인데, 종교가 오히려 더 사람을 타락시켰다 그말이요. 종교라는 것은 정욕으로 흐르면 오히려 사람을 망치는게 종교요, 이것을 옳게 하면은 향상이라.... 우리가 예배를 보더라도 하나님께 상달만 된다면 그런 향상이 어디 있습니까 ? 그러나 예배가 벌써 상달 안된다면 오히려 예배를 보는 사람이 더 나빠요 ? 안 보는 사람이 더 나빠요 ? 예 ? 어떻게 봅니까 ? 예배를 보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사람이 더 화를 받소 ? 아예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화를 더 받소 ? 안된단 말이요. 종교라는건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되는 제사가 되지 못한다면 그 종교는 오히려 불행하게 되는 거요. 오늘의 종교 부패가 이렇게 된거란 말이요. 종교라는건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되는 제사를 드려야지 그렇지 못하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집안이 망하고 민족을 망치고, 오히려 화를 더 크게 받는단 말이야요. 이게 종교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가 예배시간마다 은혜가 안 내린다면 이건 더 타락이요 ? 타락 아니요 ? 사람도 망가뜨리고 말아요. 안돼요. 예수 믿는 사람은, 종교를 믿는 사람은 언제나 기도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받는 그것이 없게 되면은 기독교는 다 타락하고 마는 겁니다. 한번 예배볼 때 은혜 못받으면 그만큼 벌써 마음이 식어지는거요. 그래서 종교라는건 정욕적으로 흐를 적에 타락이요, 희생적인 양심에서부터 나아갈 적에 향상이라! ... 이렇게 돼 있습니다. |
⑤ 도덕으로 오는 타락
도덕으로써 가정, 사회, 국가를 이루는 것을 인간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도덕을 떠나게 될 때에 가정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열매가 되었고, 사회는 피흘리는 전쟁으로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인간이 오히려 금수만도 못한 타락에 들어가는 것은 도덕 부패로 본다. 인생이라는 존재에 있어서 도덕이 없는 사회라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인간을 망치는 비극을 가져오는 것뿐이다(미 7:1-6).
강 해 : 사람이 도덕이 없다면 가정이 불행이요, 부부가 불행이요, 사회가 불행입니다. 도덕이 없이 살 바에는 차라리 자기 외딴 데 가서 혼자 사는게 낫지... 부부지간에 도덕을 못지킬 바에는 부부생활 하는게 좋아요 ? 안하는게 좋아요 ? 예 ? 가정이 도덕이 없이 악화된 가정이 되면 가정이 있는게 좋아요 ? 없는게 좋아요 ? 사회가 도덕이 없이 악한 사회가 되면 사회가 없는게 좋아요 ? 있는게 좋아요 ? 그러니까 도덕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룰라고 해서 도덕이 있는 것인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는 데는 목적을 두지않고 -이건 도덕을 지키지 않고 자기 개인의 그 무엇을 해서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목적두지 않고 - 벌써 남을 해쳐볼라는 마음을 가진 여기부터 이 도덕은 망쳐져버리기 때문에 남을 해쳐볼려는 그러한 마음이 생기는 그 시간부터 이건 도덕 타락이라 그말입니다. 도덕이라는 것은 남을 돕기 위한 것이 도덕입니까 ? 남 해치는 것이 도덕입니까 ? 예 ? 그래 부부라는 것은 피차에 서로 돕고 살라고 이루어 놓은거지 서로 해칠라고 이루어 놓은 것입니까 ? 가정이라는 건 서로 돕고 살라고 가정이 있는 것이요, 사회라는 것은 도울라고 해서 사회가 있는거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이 도덕 부패가 이렇게 됐습니다. 말짝 덕만 본답니다. 사주를 보면 당신은 부모 덕이 좋소, 처 덕이 좋소, 자식 덕이 좋소, 덕이 좋소거든... 그러면 사주팔자 좋은 사람은 부모 덕이나 보고, 자식 덕이나 보고, 처 덕이나 보고, 가만히 앉아 있다면 그거 무슨 꼴입니까 ? 아들을 낳으면 벌써 그저 요놈을 장가 보내서 며느리 덕 좀 볼라고 그거부터 마음을 잔뜩 먹고 있어 ? 그러니까 그 도덕이라는 것은 사회를 망쳤다 그말이야요. 우리가 도덕이라는 것은 아들을 낳으면 아들의 덕을 본다는 것보다도 아들을 길러서 이 사회를 위하여 쓰여져 국민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기 위해서 기르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고 또한 우리가 부부지간도 그렇단 말이요. 내가 아무개 부인이 된 이상 내가 어떻게 하든지 내가 그 남편을 섬겨서 남편이 훌륭한 사람이 되게 내세워 보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산 도덕이요, 또한 남편이 그 아내를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서... 그러지 않고 이거는 멍텅구리 같이 내말만 꼭 들어라 이거야. 부모는 자식을 효성만 다하라고 그래요. 또한 남자는 자꾸 아내보고 자기 섬기라고만 그래요. 양반은 상놈보고 섬기라고만 그래요. 그러게 섬김을 받을라는 그 마음을 가진 도덕이라는 것은 부패입니까 ? 부패 아닙니까 ? 예 ? 부패라요. 남을 섬기고 남을 도와주겠다는 여기서 도덕이라야 되겠는데 서로 다 자기가 도움을 받아보려는 섬김 받을라는 그런 그 사회라는 것은 그 도덕은 부패라 그말이야. 기독교의 도덕이라는 것은 뭐냐 할 때에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었고, 약한 자를 붙들어주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죄인을 바로 돌봐주고... 그게 정말 주님의 도덕 아닙니까 ? 남을 살려보려고... 그러니까 기독교의 도덕은 발전했지만 벌써 양반이라고 '에헴' 하고 나 섬기라고만 그러면 발전이 될까요 ? 그러니까 불교 도덕사회, 유교 도덕사회라는 것은 발전을 못하고 다 망쳐버렸고, 희생적인 맘으로 남을 섬긴다는 그런 그 도덕적인 기독교는 발전했다 그말이야요 알겠습니까 ? 그래서 사람의 타락은 몇가지죠 ? 질적 타락, 지식 타락, 기능 타락, 종교 타락, 도덕 타락 이렇게 된다 말이지요. 그러면 오늘 이 사회가 지금 타락을 했소 ? 안했소 ? 질적으로, 지식으로, 기능으로, 종교로, 도덕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이걸 향상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가 또 나온다 말이요. |
① 인생에 최고의 가치를 찾는 일
인생이라는 것은 어떠한 길을 가야 끝을 바로 맺느냐는 것을 바로 알고 떠나는 데서부터 가치를 찾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치라는 것은 끝을 바로 맺는데만 있기 때문이다(빌 3 : 14 - 16) 아무리 잠깐의 고난이 있다 하여도 목적을 위한 고난은 오히려 영광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빛의 생활이니 빛이라는 것은 멀리 내다 보는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롬 8 : 16 - 1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빛으로 오신 것이다(요 1 : 6 - 14). 세상에 제일 최고의 가치를 이룬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말구유에 탄생하셔서 빈곤의 생활에서, 박해를 받은 생활에서, 십자가의 악형을 받는 데서 완전한 인생의 가치라는 것을 다시 찾아 주는 열매를 가져오는 것이 기독교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가치는 잠깐의 고난에서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이루는 일 밖에는 인간에게는 더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계 5 : 9 - 10). 그러나 인간들이 수고를 하되 영원한 것을 찾지 못하는 수고라는 것은 오히려 후회를 가져오는 슬픔이 되고 말 것이다(계 18 : 19).
강 해 : 이제는 어떻게 해야 향상이 되냐면 이건 목적을 바로 두고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말입니다. 몸이 병들었다면 이제는 고치는데 목적 두고 자르고, 뽑고, 막 깎아내고, 막 이젠 수술하고 그럴 수 밖에 없죠 ? 그와같이 우리 인간이 타락해진 이것을 우리가 다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목적을 두고 고생을 낙으로 알고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만민을 구원한다는 목적을 두고 말구유에서 나서부터 목수의 생활을 거쳐서 노방전도를 거쳐서 겟세마네를 거쳐서 골고다를 거쳐 나간 그 생활 이것은 타락한 인생을 향상시키자는 목적에서 당신이 그렇게 걸어 나갔다면 우리는 그렇잖아요 ? 하여튼 우리가 이래도 저래도 고생할 바에는 목적을 예수님께 두고서 한번 고생해 보자 이거야 예 ? 그건 왜냐 ? 예수님 밖에는 인간을 다시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을 간 이가 없다 그말이죠 ?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가 그저 덮어놓고 목적 하나를 바로 두고 고생을 낙으로 알고 죽음을 영광으로 아는 그런 마음 가지고서 나가는 길 밖에 없다 그말입니다. 적군에게 피해를 당해서 나라가 위기에 떨어졌으니 이제는 부득불 목숨 내놓고 싸워야지 안싸우면 안되겠다. 마귀 적군에게 큰 피해를 당하고 점령을 당하고 포위를 당하고 압박을 받는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 놈의 마귀 때려부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지고 싸우는 길 밖에 없다 그말이야요. 이제는 향상을 위해서 한번 싸워보겠소 ? 가만히 있다 죽고 말겠소 ? 예 ? 정말 싸우겠소 ? 그 혁명이야. 이건 혁명적인 투쟁. 예수님이 혁명적인 피를 흘려서 싸웠기 때문에 세계를 구출할 수 있는 구주가 됐고 우리도 혁명적인 투쟁을 해서 목적 달성을 위해 싸워나가는 길 밖에 없다 그말입니다 향상이라는 것은. . . . |
② 완전한 지식을 찾는 일
금일에 인간들은 과학적인 지식으로써 인간에 국한된 사회라는 것을 알고 나간다는 것은 결국에 유물론 공산당의 정치가 되고 말 것이다 (단 11 : 36 - 39). 왜냐할때 인간 과학적 지식의 최고 발달을 가져오는데는 자동적으로 인간의 머리 속에 한계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체를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도 필요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 지식을 가지고 더 높고 완전한 지식에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통일된 사회가 올 것을 목적으로 두고 가르치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사 11 : 9). 지식은 인간의 두뇌로써 움직여야 할 지식도 있고(단 12 : 4), 무소불능의 조물주 하나님의 영적 활동으로써 오는 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세계를 아는 지식도 있는 것이니 우리는 과학적인 생활에서 목적을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신의 역사를 순종할 때에 이것을 초인간적인 지식의 종교라는 것이다(마 13 : 11). 세밀히 말하자면 지구상에서 사는 생활에 최고의 과학발전은 최고의 하나님의 심판과 새시대를 이루기까지의 한 도구에 불과한 기계다 (계 11 : 18). 그러므로 기계에 국한된 인간이 아니고 영원한 영생의 생명을 목적 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의 향상이라는 것이다 (단 12 : 10).
강 해 : 과학적 지식에 국한돼서 과학적 지식으로써 하나님 말씀을 판단하고 과학적 지식으로써 반대를 한다는 것은 이건 타락이라 그말이요. 그러나 우리는 과학적 지식을 무시한다는 것 보다도 이것을 가지고서 좀 더 올라가서 과학 밖에 있는 그 지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과학적인 지식을 도구로 쓰는 생활이면 된다 그말이야요. 알아요 ? 우리 전 집사님 이제 비행기 타고 미국에 며칠이면 갑니까 ? 이틀이면 가지요 ? 예, 열 네 시간요 ? 열 네 시간이면 하루도 못되네. 그러면 이게 과학발전이죠 ? 예 ? 그러면 열 네 시간동안 미국갔다는 것으로 다 됩니까 ? 거기가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서 역사해야 됩니까 ? 열 네 시간동안에 미국갔으면 어떻다는 말이요 ? 잘한 것도 없다면 그렇잖아요 ? 빨리갔다면 어떻다는 말이야. 빨리 갔으면 그 목적을 바로 해야지. 그러니까 내가 한말은 그거야요. 오늘의 과학발전이 안됐다면 우리 서울 양반들 어떻게 수도하러 왔겠습니까 ? 동두천 양반들 올 수 있습니까 ? 예 ? 올 수 있어요 ? 없지요. 그러나 과거에는 동두천에서 여기 오려면 아마 한달쯤 걸리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오던 사람이 그저 몇 시간동안에 여기 왔으니 그럼 이것으로 만족입니까 ?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서 하나님 지식을 배워야 됩니까 ? 그래 오늘의 인간들이 기계를 만들어 놓고 기계 앞에 종이 되고 말거든. 기계를 만들었다면 기계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향해 나가야 되겠는데 기계를 만들어 놓고 기계의 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단 말이지요. 그것이 타락이라는 거요. 알겠지요 ?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데 누구든지 과학적 지식을 정신작용으로 아는 동시에 영적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살펴본다면 이게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어떤 사람 과학을 또 무시해요. 에이 ! 그까짓 것 ! 학교는 가 뭘하노 ? 천당가면 되지 하고 말짝 다 가만히 있다면 이건 멍텅구리 사회야. 천당만 가겠다고 말짝 과학은 연구 안하고 마주 앉아서 기도만 하고 있다면 사회생활이 될까요 ? 꼴이 돼요 ? 그것도 안되지요. 에잇 ! 죽어 천당가면 되지 까짓 과학은 해 뭘하노 ? 말이 안돼요. 그러니까 과학이라는 근본은 기독교 신자들이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의 진리를 받는 동시에 과학이라는 것이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이건 이렇게 된 거요. 과학이 발전함으로써 기독교가 나온 것이 아니고 기독교가 나옴으로써 그 영적 지식이 발달된 사람이 과학을 찾는다 말이야. 그런데 그만 오늘에 와서는 영적 지식이 풍부한 기독교인이 발견한 과학을 가지고 영적 지식을 부인하는 무신론 공산당이 나왔어요. 이게 타락이요 ? 진보요 ? 타락이라 그말이요. 기독교 타락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인제 과학적 지식만을 가지고 나간다면 부득불 공산당 되고 마는 거야요. 이 세상을 과학적 지식으로 판단해 나간다면 나중에는 공산당이 나오고 맙니다. 과학적 지식은 도움받고 여기 신의 지식을 체험하고 신의 지식을 받는 이 세계에 들어가야 공산당을 이기게 돼 있지, 꼭 산통만 튕기는 세상 과학적 지식이라면 공산당이 나오게 돼 있습니다. 알아요 ? 그래서 이 사회가 과학적 지식으로만 나가고 영적 지식이 풍성하지 못하면 공산당 사회 그렇게 돼요 ? 안돼요 ? 예 ? 다 공산당과 협상하고 마는 거야요. 그래서 나같이 이렇게 지게꾼이라도 난 과학적 지식을 받는 사람이요 ? 하늘 지식을 받는 사람이요 ? 나같은 사람도 필요하지요 ? 예 ? 필요합니다. 이 때에 지겟군이 입만 열면 얼마든지 책자가 나온다는 이것은 뭔지 압니까 ? 과학적 지식으로 세상이 망하게 됐으니 지게꾼을 불러서 하늘의 지식을 줘서 과학자들이 놀래서 따라 오게 만들어야지. 그렇잖아요 ? 여기 무슨 지식 배우러 왔지요 ? 예 ? 하나님의 지식. 바로 왔소 ? 어떻게 이렇게 바로 왔지요 ? 참 용시다. 과학발전의 비행기를 타고, 과학발전의 급행차를 타고, 과학발전의 고속버스를 타고 하늘 지식 배우러 왔으니 바로 오지 않았소 ? 예 ? 그렇지요 ? 아주 이상적인 사람들이요 알고 보니까. 그렇게 돼야 이게 된단 말이야. 지식 향상이라는 건..... |
③ 기능의 향상
인생은 기능이라는 데서 발전을 가져 올 때에 최고의 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은 기능적인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창 1 : 28).
우리 사람은 초인간적인 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다 (엡 2 : 2). 아무리 무신론자가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하여도 그 자체가 마귀의 도구가 된 생활이라고 본다 (합 1 : 11).
하나님은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예언할 때에 신의 신을 반대하는 자가 북방을 자리 잡고 나왔다가 필연코 망할 것을 심판기라 했던 것이다 (단 11 : 36). 그러므로 짐승이라고 계시록에 말했다. 마귀의 최고의 미혹은 무신론이라고 본다 (계 13 : 1 - 2). 심판기에 무저갱에서 나온 흑암은 이 사상이다 (계 9 : 1 - 2). 그러므로 마귀의 도구로 쓰이는 짐승은 육 육 육이라 말한 것은 마귀의 기능이 짐승을 통하여 최고도로 발전할 것을 말했다 (계 13 : 3 - 4).
우리의 생활의 기능은 다음과 같이 향상 될 수 있다. 사람이 물체에 국한된 기능을 목적하고 움직이는 생활은 향상을 가져올 수 없는 타락의 생활이다 (사 3 : 1 - 8). 기능의 향상이라는 것은 이 한계를 넘어서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의 단계라고 한다 (요 3 : 5 - 7). 중생을 한 자에게 초인간적인 기능이 하나님께로 부여된다 (행 2 : 38 - 39). 인간의 자체는 신의 기능을 받을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승천할 때에 너희는 성신권능을 받아서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부탁의 말씀을 하시고 그때부터 승천하신 주님께서 구름타고 올 때까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되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데까지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기독교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행 1 : 8). 기독교는 이 본능을 상실할 때에 오히려 이방에게 밟히고 만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계 11 : 2).
신은 무소불능의 자체를 가지고 계시지만은 언제나 그 기능을 사람에게 주어서 역사하는 것을 영광으로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이다 (요 14 : 12 - 13).
강 해 : 기능의 향상인데 오늘의 과학만능을 믿는 인간들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합니다. 망할 짓이요 ? 흥할 짓이요 ? 타락이요 ? 향상이요 ?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 아니, 이 사회가 정신작용으로 기계를 만들어 놓고 기계가 하도 잘 돌아가니까 기계 힘이면 다 되지 하나님은 죽었답니다. 이런 멍텅구리들, 참 기가막힌단 말이요. 그래서 우리 기계의 돌아가는 그 힘 정도 안에서의 인생이라면 인생의 가치가 있습니까 ? 그래, 이 기계에 속한 인간이 아니고 과학적 기계를 초월한 신의 능력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중생을 받을 때에 신의 능력 받아가지고 과학적 기능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올 때에 이것이 사람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자, 과학만능을 믿는 사람은 기계에 국한된 인간이요, 신앙만능을 믿는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요. 누가 이길까요 ? 그러면 여러분들 기계의 힘 밖에서 오는 힘을 좀 받아 봤소 ? 못받아 봤소 ? 예 ? 조금 받아보고 말았어요 ? 지금도 옵니까 ? 오지요 ? 그럼 기계의 밖에서 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야 공산당을 이긴다 그말이야요. 알아요 ? 오늘의 인간과학의 기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 많이 있을까요 ? 많이 있어요 ?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 기능을 의지하고 여기에서 과학적인 무기를 무서워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권세를 받을 때에 과학적 무기로써 살라져 버리는 세상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시대 갑니다. 우리 그렇지 않소 ? 나부터도 그거요. 나부터도 신의 능력을 받은 체험이 없다면 과학자 앞에 가서 머리 숙이겠습니다. 협상하겠습니다. 과학적 과학적하는 공산당 앞에 머리 숙입니다. 우리 공산당과 싸우려면 자 신의 기능을 받아야죠 ? 예 ? 기계를 만드는 사람과 무기를 만드는 사람과 능력받은 사람과 싸우면 누가 못견딜것 같아요 ? 기계가 못견딜것 같아요 ? 그거 미신 아니요 ? 미신이죠 ? 원 저런 미신. 아니, 과학적 무기를 피할 수 있어 ? 6. 25 때 피난 가다 이 복음을 전하러 가는데 꿈을 꾸는데요. 어떤 산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3층 집이 있는데 꼭대기 올라가서 나는 사람 살리는 혁명이다 하고 고함을 지르니까 총을 든 사람 넷이 올라오더니 뭐야 ? 사람 살리는 거야 ? 떡 디밀어 옵니다. 해보자. 하여간 내게다 총을 대고 쏘는 거야요. 아무리 총을 잡아당겨도 총이 나가야지. 어 ? 이 놈 봐라. 하나님의 능력은 총을 잡아당겨도 총이 안나가게 할 수도 있소 ? 없소 ? 아무리 잡아당겨도 총이 나오나 ? 아니, 이 놈 봐라 하더니 집에다 불을 쏟으니 집에 불이 다 붙어도 내 몸이 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내 손에다 지팡이를 갖다 쥐어주면서 당신도 무기를 받으시요. 그래 내가 있다가 여보, 난 사람 살리는 혁명인데 무기가 무슨 필요가 있소 ? 그렇게 말하니까 그래도 가지라고. 그런데 캄캄한 밤이 됐더라 그말이야요. 어스름한 달밤이었어요. 그걸 짚고서 나가다 보니까 빈민굴이 나타나는데 과학으로는 기근의 날에 살리지 못해도 능력의 지팡이를 들고 나가는 사람은 살릴 수 있습니다. 그거 아닙니까 ?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 기계를 이길 수 있는 이런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 어떻게 공산당과 싸울 수 있겠냐 그말이야요. 알아요 ? 그래서 우리는 그 기능의 향상을 가져야 됩니다. 자, 우리 믿는 사람이 예배 볼 때마다 자꾸 능력을 받는 체험이 있어야지요 ? 예 ? 어떻게 매일매일 시간 시간마다 받는 체험들이 있소 ? 난 그거 받는 재미에 예배 보는 거야요. 그거 받는 재미에 호소하는 거요. 만일 기독교에 초인간적인 능력의 역사가 머리 위에서 끊어졌다면 우리는 기계 앞에 머리 숙이는 기독교 되고 맙니다. 과학적 무기 앞에다 머리 숙이고 말아요. 그래요 ? 안그래요 ? |
④ 종교적인 향상
종교라는 것은 원시적인 종교도 있고 종말적인 종교도 있는 것이니 종교의 근본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데서부터가 시발점이 되었다 (창 4 : 4). 이것은 죄진 인간이 종말적인 종교를 이루기까지 영자적인 종교에 불과했다 (히 10 : 8 - 14). 그 때는 뚜렷한 의식이나 또는 법이나 언약의 말씀이 책이 없는 양심에서 움직이는데 불과한 종교다. 그러나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종교는 발전했고 양심이 정욕으로 흐르는 종교는 타락했던 것이다 (롬 1 : 21 - 23). 그러므로 기독교는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종교로서 흘러오는 데서 완전한 언약을 세우는 시대를 구약이라 하고 그 언약을 열매로 끝을 맺는 종교를 신약시대라 하는 것이다 (딤후 1 : 3). 열매를 이루는 종교에도 다음과 같이 향상한다. 중생을 목적한 종교, 이것은 온 세계 인류가 사망 아래에서 죽은 영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도록 하는 것을 기독교의 십자가의 도라 하는 것이다 (요 1 : 12). 그러나 온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환난과 재앙이 올 때에 남은 종, 남은 백성으로서 활동하는 역사를 새일의 역사라는 진리다. 이것은 양심적인 종교가 승리를 이루는 즉, 완전 결실을 이루는 지상 평화왕국을 이루는 일을 말한다 (사 43 : 19 - 21). 그러므로 개인적인 종교가 민족적인 종교로 발전했고, 민족적인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했고, 세계적인 종교가 완전히 평화왕국으로 끝을 맺는 것이 종교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사 9 : 1 - 7).
강 해 : 종교는 의식이 아니요 도덕이 아니요 이건 율법만이 아니요 양심인데 이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 유일신 종교를 비롯해서 완전한 민족적인 종교가 이뤄졌는데 양심적인 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묵시가 나타나서 세계적인 종교가 될 것과 세계를 정복하는 성도의 나라가 될 것을 봤다 그말입니다. 알아요 ? 양심적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자기가 믿는 그 종교의식 정로가 세계적인 종교가 될 것 초림의 주를 봤고, 새시대가 되는 종교가 될 것 새일의 진리를 봤단 말이요. 그러니까 옛날에 개인적인 제사를 드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나타나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 하는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왔던 응답이라 말이야요. 그러면 그 씨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종교가 되는 나라가 즉 선지국가가 됨으로 그 나라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모든 성경이 이뤄졌다 그말이야요. 성경을 썼다 말이야요. 그러면 그 나라에서 쓴 성경대로 초림의 주가 오셔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 승천해서 성경대로 성신강림해서 성경대로 온 세계인류가 지금 예수를 믿게 됐고 인제는 뭐냐할 때 성경대로 세계는 새로운 시대가 오기 위하여 환난이 오고, 재앙이 오고, 성경대로 또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성경대로 새로운 시대가 온다. 이 종교는 이렇게 돼요. 양심적인 종교시대에서 양심종교를 바로 지키는 사람이 민족적인 종교를 이루는 나라를 이룬 것이 이스라엘이요, 민족적인 종교에서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한 것이 그리스도의 초림의 역사로 된 것이라요. 또 세계적인 종교가 완전히 지상왕국 이루는 것은 재림의 주가 옴으로써 된다 말이야요. 알겠습니까 ? 그러면 새일이란 뭐냐하면 종교발전이야요. 자, 새 언약의 피를 믿는 이것이 세계적인 종교라면 새일의 진리는 새시대가 이뤄지는 지상왕국이라. 알겠습니까 ? 새 언약의 피를 믿음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고 새일의 역사를 믿음으로 온 세계가 다 불타버려도 살아 새시대 간다 그말이야. 그러면 새일교회가 나와야지요 ? 즉, 이사람이 과학발전은 못한 사람이요. 그러나 종교발전은 제가 한 사람이야요. 자, 내가 강단에 서서 앵금으로 말짝 책자를 불러낸다면 종교발전이요 ? 발전 아니요 ? 예 ? 이게 종교발전이야요. 이런 귀한 노래를 5분, 10분에 내가 입으로 작사했단 말이요. 풍금없이 입으로 내 작곡했단 말이요. 아무 책없이 앵금으로 불러서 전부 다 책자를 낸단 말이요. 앵금으로 과거에는 월간지 하나 내려면 목사님들이 여러분이 와 냈지요 ? 나는 딱 그저 이렇게 공부 시키다 들어가서 앉아서 입으로 부르면 월간지 나옵니다. 발전이요 ? 발전아니요 ? 이게 천당가는 역사요 ? 새시대가는 역사요 ? 그런데 발전 못한 종교인이 날 이단이라 그럽니다. 발전 못한 바리새 교인들이 발전하는 사도를 이단시 했고, 말세에 발전 못한 바짝마른 정통이 새시대 가는 역사를 이단시 합니다. |
⑤ 도덕적인 향상
인간도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발전할 수 있다.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생활이 없는 자도 인간을 상대하는 도덕도 있지만 이것은 타락에 불과한 도덕사회를 이룰 수도 있다(골 2 : 22 - 23). 그러나 양심에서 하나님을 상대한 도덕에서만 향상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부모에서 부터 자녀의 축복을 하나님을 향한 양심적인 도덕에서 받게 되는 것이다 (엡 6 : 1 - 4).
그러므로 가정은 도덕에만 국한된 가정의 발전이 아니고 신의 축복을 목적두고 신앙양심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부부가 될 적에 여기서 부터 신의 축복은 그 가정에서 부터 시작되게 된다 (사 44 : 1 - 5). 이것이 산 믿음에서 이루어진 아브라함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도덕은 양심생활에서 필연적인 열매로 이루어지는 도덕이 있으니 이것은 신께서 인정하는 생활이 된다.
도덕을 위한 도덕이 아니고 신을 순종하는 양심에서 목적을 둔 도덕이기 때문이다 (마 6 : 1 - 4).
인생이라는 것은 신의 축복을 받음으로써만 영원한 가정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다 (사 49 : 19 - 23). 종교는 영혼을 목적둔 것 만이 아니고 지상에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여 신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고 미의 세계를 축복으로 받는 생활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이라는 것이다 (사 65 : 21 - 23). 그러므로 완전한 성남 성녀로서 이루어지는 도덕이 지상에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는 것으로 지상은 완전이라는 것을 이루게 된다 (사 60 : 15 - 22).
강 해 : 이를 닦지않고 세수도 안하고 3년 있어야 효자라고 했으니 그 놈의 도덕이 망해요 ? 안망해요 ? 남은 비행기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데 아니 만날 효성을 다한다고 만날 집에 꿇어 엎드려서 귀신 앞에서 무릎 꿇고 만날 뚝딱거리고서 제사만 지내고 있으니 그것은 전부가 생명없는 도덕이란 말이요. 그리고 불교도덕을 지키던 인도국의 비참과 아시아 보시요. 유교도덕을 지키던 동방 이 나라에 그 종국의 비참이 어떻게 됐습니까 ? 그러니 벌써 그건 안된다 말이지. 그러나 하나님 축복을 믿고 부부가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버지, 어머니,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이렇게 해서 기도하면서 나갈 때 이건 도덕을 위한 도덕이 아니라 신을 믿는 신앙에서 열매 맺는 도덕이 되니 생명이 있다 그말입니다. 이젠 거기에서 사람이 날 때는 도덕으로 이뤄진 인물입니까 ? 능력을 받은 인물입니까 ? 능력을 받는다 말이야요. 그러니 이건 천양지 차별이거든. 그러니까 불교도덕 국가도 다 부패해서 망했고 유교도덕 국가도 다 부패해서 망했지만 기독교 종교도덕에서 나온 그 나라는 발전한 것 아닙니까 ? 그래서 난 이렇게 봐요. 부부지간에 남편은 자꾸 가면을 쓰고라도 아내의 비위를 맞춰봅니다. 또 아내는 남편 비위를 맞춰 볼라고 가면을 쓰고라도 맞춰봅니다. 그런 부부생활이라면 이것이 가정발전이 될까요 ? 안돼요. 남편이 보지 못하는 데서는 잘못된 짓 하다가도 남편 만나면 껍데기로 도덕상, 또 아내 몰래는 별 짓 다 하다가도 아내를 만나면 도덕상, 아버지 몰래는 별 짓 다 하다가도 아버지를 만나면 도덕상, 아들 몰래 별 짓 다 하다가도 아들 만나면 도덕상 그건 망하는 도덕이라 그말이야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기에서 골방 속에서라도 하나님 경외하는 깨끗한 양심에서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남편을, 말씀에 의해서 아내를, 하나님 경외하는 말씀에 의해서 자녀를, 이렇게 되면 그것이 이상적인 도덕이 아니냐 그말이죠. 이런 가정이 되어야 이것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이러한 도덕이 있는 가정에서 인물이 나오고 이러한 도덕을 가진 그 가정에서 훌륭한 정치가가 나오고 훌륭한 과학자가 나왔습니다. 다 알겠습니까 ? 그 틀림없는 것 아니야요 ? 그러면 오늘도 그렇잖습니까 ? 오늘도 교회가 도덕으로 이뤄진 교회가 되야 돼요 ? 하나님 경외하는 교회가 되야 돼요 ? 목사가 마음에는 별 오두깨비같은 마음을 가지고서 도덕상, 장로가 도덕상, 집사가 도덕상 그러고 만다면 이 교회는 망하는 거란 말이야요. 알아요 ? 마음에는 사랑의 불이 없지만 도덕상 목사로서 체면을 세워야지 그러면 그 교회 망했소 ? 안망했소 ? 마음으로는 교회를 받들 마음이 불타지 않지만 장로가 도덕상 덕이 안되니 나도 좀 해야지 그러면 그건 다 외식이란 말이야. 그건 망해요 ? 안망해요 ? 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이라야 이것이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이라야 그 부부가 이상적인 부부로서 열매가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을 가진 교회라야 그 교회가 열매가 있습니다. 그래야 향상된다 말이죠. 타락한 인생은 목적을 가지고 싸워야 된다. 왜 ? 타락을 안했다면 싸우지 않아도 되겠지만 우리 타락한 인생이 그걸 고치기 위해서는 목적을 바로 두고 싸워야 된다. 그다음에요 예 ? 지식 그러면 과학적 지식을 무시해야 돼요 ?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야 돼요 ?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가지고 하나님 지식을 배우는 세계로 들어가자 이래야 이것이 향상이 됩니다. 그 다음에요 기능의 향상이라. 그러면 기계에 국한된 힘을 가져야 돼요 ?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돼요. 비행기 기계를 타고 빨리갔다고 만족이 아니고 급행차 기계를 타고 빨리갔다고 만족이 아니고 기계의 덕분에서 좋은 무력이 나왔다는게 만족이 아니고 기계의 덕분으로써 좋은 빵이 나왔다고 만족이 아니라 우리는 기계 밖에서 오는 그 힘을 받는 생활이 있어야 향상한다 그말이야요. 그 다음에 뭐요 ? 예 ? 종교라. 종교라는 것은 천당으로 끝입니까 ? 새시대로 끝입니까 ? 천당으로 끝마치는 종교가 아니고 반드시 새시대를 이루는 종교로 기어코 들어가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 그래서 오늘의 기독교는 새일역사로 들어가야 돼요. 죽어 천당가는 은사 받은 사람이 변화승천하는 역사로 들어가야 이게 종교발전이라는 겁니다. 그렇찮아요 ? 공산당 내려오너라 난 죽어 천당간다. 국가는 망하든지 말든지 죽어 천당가면 되지. 이건 타락입니다. 이제는 정말 공산당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악의 세력 굴복시키고 떨게 만들고 새시대를 이루는 그 권세역사로 들어가야 이 교회는 교회 구실하는 거야요 때가. 알겠습니까 ? 그래서 양심적인 사람이 받은 말씀을 통하여 민족적인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세계적인 종교가 새나라가 이뤄지는 종교로 들어가는 이것이 종교발전이라는 것입니다. |
인생이라는 것은 그 시대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어디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 24 : 34 - 51). 사람은 일 년 자라는 풀과 같이 그 절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요, 그 시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인간의 생활이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시대가 변천되는 것은 인간 자력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시대는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행 1 : 6 - 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리 선지를 통하여 앞으로 어떠한 시대가 온다는 것을 말씀한 대로 되어지는 것이니 그리스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할 때 부터가 하나님의 예언한 말씀이 글자대로 이루어지는 시대로 들어 온 것이다 (벧전 1 : 20).
금일에 온 세계인류가 다 평등을 찾고 민주적인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근본이 세계인류는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슥 9 : 10). 그러나 금일에 와서 자유를 부르짖는 시대가 오히려 자유를 악용하는 부패가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나타나서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도저히 인심악화를 수습할 수 없는 때가 온 것은 선지의 예언대로 인류 전멸이라는 심판기가 온 증거이며 도저히 시대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난제가 온 것이 하나님의 정한 때가 온 증거이며 (계 6 : 2 - 14) 이 시국에 어떠한 자가 되어야 살 길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계시록과 선지서에 가르친 말씀이다(계 10 : 7).
그러므로 우리는 시국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바로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 22 : 6).
강 해 : 우리는 난제가 뭐냐하는 것을 또 알아야 돼요. 지금 종교인들이 난제 해결을 몰라요. 그래서 난제라는 것은 무엇이 난제이냐 할것 같으면 이거야요. 기독교가 평등을 부르짖고 나온 기독교입니다. 남녀의 동등권을 가지고 나온 기독교요, 또한 이방과 유대의 평등을 부르짖고 나오는 것이 기독교요, 또는 귀족과 비천한 사람이 평등을 부르짖고 나온 기독교입니다. 그건 왜냐 ? 예수의 십자가는 세계인류의 죄를 위해 죽은 십자가이니 그 십자가 안에는 계급이 없다, 인종의 계급이 없다, 유·무식의 계급이 없다, 선과 악의 계급이 없다, 다 동등하게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그들은 하나가 된다는 이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평등이라는 이 사상이 세계를 통일 했습니다. 세계를 통일 했어요. 그래 지금은 어느 나라나 다 예수님의 다년을 쓰는 것은 민족과의 평등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근본이야요. 그래서 1972년이라는 이 다년을 쓰는 것은 민족과의 평등이라는 기독교다. 그리스도라는 것을 단위로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에 와서 교회가 부패해서 평등이라는 이러한 사회가 되고 평등이라는 이러한 교회가 된 여기에서 그만 악화 되어서 그 자유라는 것을 악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단 말이야요. 평등을 찾던 교회에서 성신이 떠나고 부패되어서 악화되니 그 평등이 큰일이요 ? 큰일 아니요 ? 큰일이란 말이야. 평등을 찾던 사회에 공산주의가 나와서 막 사람을 때려 죽이니 큰일이요 ? 큰일 아니요 ? 이것이 난제라는거요. 그러니 이제는 다 평등이란 법으로써 이렇게 되어놨는데 민주적인 기독교 아래 이제와서 자꾸 교회가 요즘 본다면 교인들이 제멋대로 놀라고 그래요 ? 안놀라고 그래요 ? 예 ? 누구 말들어요 ? 제멋대로 나도 주권있다는 거야. 그 평등인데 말이야 이 양반 이거 뭐야 ? 나도 그만한 주권이 있어. 툭하면 데모합니다. 그렇지요 ? 미국사회는 그 야단났소 ? 안났소 ? 이것이 야단이라는거야. 그러니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느냐 ? 이겁니다. 이것이 심판기라 그거요. 모든 선지 예언에 세계적인 평화의 복음을 전한 다음에 악한 사회가 되겠으니 그 때는 하나님이 악한 자를 다 쳐 없애고서 의로운 사람만 내놓겠다는 것이 하나님 말씀 아닙니까 ? 평등을 찾고 평화를 꼭 전하던 이 사회가 악화될 때에 여호와 나타나서 끝까지 신앙절개 지킨 사람은 내놓고 음녀화된 세상을 불태워버리겠다 이게 성경이야요. 그러니까 지금 이 사회가 평등이라는 것을 받아가지고 이렇게 나날이 지금 보시요. 지금 사회가 자유를 의를 위해 사용합니까 ? 악을 위해 사용합니까 ? 자유를 죄를 위해 사용하고 있단 말이야요. 남녀 평등권을 죄악에다 사용하고 빈부귀천의 평등권을 죄악에다 사용하고 민주국가라는 그 민주가 죄악의 민주가 됐다 그말이야요. 그래 이것이 심판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가 오셔서 심판하므로만이 해결되게 돼 있지 어느 정부가, 어느 교권이 감당 못합니다. 당할 수가 없어요. 미국의 대통령이 정치해서 미국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습니까 ? 예 ? 우리 나라에 대통령이 인심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까 ? 어떤 교회의 어떤 목사님이 그 자력의 힘으로 교회 그 부패성을 막을 수 있습니까 ? 이거는 심판이라 그것입니다. 심판, 심판하고 새시대 올 때 이렇게 된다고 그랬단 말이야요. |
동물에게는 사상이라는 것이 없되 사람은 누구나 다 사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상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생관에 의하여 각각 다르게 되는 것이다. 소위 공산사상이라는 것은 인생관을 고등동물로 보는 것이니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단 11 : 37). 인생은 강자가 약자를 먹고 어떻게 하든지 기만적인 정책을 써서라도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자유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상은 죄도 심판도 없다는 것이니(단 11 : 23 - 24), 이것은 종교를 아편화시키는 것이니 이 사상이 들어갈 때 사람은 자연적 악해지고 무자비한 투쟁을 하게 된다 (단 11 : 32). 그와 반대로 참된 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소망으로 아는 사상이다(사 66 : 2, 18). 이미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사실과 개인적 인격적인 체험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그날 그날 사는 데서 열매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신앙양심에서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소망에서 신께서 남을 구원코저 하는 그 뜻을 목적하여 죽기까지 이 목적을 두고 싸우는 것을 기독교의 순교적인 사상이라 하는 것이다 (계 6 : 9 - 10).
이 사상은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 신의 감화를 받은 사람이 가진 신앙사상이라는 것이다 (요一서 3 : 16). 그러므로 필연코 승리는 남을 살리고져 하는 사상이 조물주 하나님의 편이니 세계를 통일하는 승리를 보게 될 것이다 (단 7 : 18, 22). 금일에 사상이라는 것은 이것으로써 큰 대립을 가져오는데 끝까지 이 두가지 사상에서 결전을 보게 될 것이다.
강 해 : 기독교는 이 사상전이 난제입니다. 난제인데 자, 봐요. 공산주의 사상이라는 것은 이날까지 말짝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있다 그러죠 ? 공산당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있다 그러죠. 그 사람들은 영혼이 없답니다. 우리는 죄를 두려워하지요 ? 그 사람들은 죄가 없답니다. 우리는 심판이 있다고 하지요 ? 그 사람들은 심판이 없답니다. 사람은 고등동물로 그저 맘껏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하나님이 있어, 그래서 우리는 자연계를 움직이는 하나님을 믿지만 그들은 자연을 즉, 전능의 힘 이것 뿐이지 다른거 없다는 거요. 그러니 기독교 사상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신 것을 믿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추호도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 사상이요 또는 그대로 믿음으로써 우리가 은혜를 받고 체험을 받고 정말 내려오는 것이 또한 기독교의 신앙생활이란 말이야요. 자, 그러면 이게 합할 수가 있습니까 ? 기독교가 공산당을 용납할 수 있습니까 ? 사상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합할 수가 없어요. 안돼요. 어떻게 합 합니까 ? 그러니까 이 사상전은 기독교와 대립이 되지 이 사회와는 대립이 안됩니다. 자, 보시요. 공산당과 싸우던 자본주의가 지금 싸웁니까 ? 협상합니까 ? 그거 보시요. 그건 싸울 필요가 없단 말이야요.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세상에서 잘 살아보자는 거요, 자본주의도 세상에서 잘 살아보자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싸울 필요가 뭐 있겠냐 말이야요. 그러니까 나중 결말은 기독교와 싸우는데 기독교도 그걸 인정하면 싸울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안믿는 사람과 공산당과 싸울 필요가 있어요 ?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죄를 용납하는 기독교와 죄의 왕 공산당과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 거기 굴복하고 말아야지. 그러니까 이 기독교는 이제 완전히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런 사람이 아니고는 사상전을 못하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상이 직접으로 멸공이야요. 하나님께서 인간종말에 본다면 북방 무신론을 들어 쓸 적에 무신론이라, 침략자, 궤휼자, 강포를 행하는자, 그 사람을 들어서 인간을 치고 하나님께서 그 북방세력을 쳐 없애고서 새시대 온다고 그랬거든.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즉, 멸공이죠 ? 예 ? 그렇지 않습니까 ? 인간종말에 북방 무신론자가 누구입니까 ? 예 ? 강포를 행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 북방에 남의 재물을 막 빼앗는 자가 누구입니까 ? 진리를 짓밟는 자가 누구입니까 ? 공산당이라 쓰지 않았지만 이게 공산당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은 인간종말에 가서는 반드시 북방이 나올 것을 말했거든요. 그걸 때려 없애고서 새시대라. 그러니까 끝까지 우리가 공산당과 싸울 사상은 계룡산 수도원 이 사상입니다. 이 사상이야요. 이건 계룡산 수도원에 나타난 이 말씀은 이것이 즉, 멸공입니다. 멸공이야요. 용납 못하는 거요. 공산당도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사람 싸울거 없지요 ? 예 ? 공산사상을 가진 자도 예수만 믿으면 천당간다는 거죠. 그거 싸울거 없어요. 그래서 지금 기독교 막스주의라는게 나오는데요. 공산당을 갖다 지금 위원장으로 모시고 위원으로 모시고 이제 같이 나가도 예수만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이것은 지금 사상문제인데 음녀다 그거요 음녀. 하나님의 사상은 마귀사상을 없애려는 것이 심판인데 마귀사상을 용납한다면 음녀요 ? 음녀 아니요 ? 음녀란 말이야. 같이 죽어야지요.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과 사상이 통일된 사람으로서 신과 같이 되기 전에는 공산당과 싸울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 |
전쟁이라는 것은 영토를 다투는 제국주의적인 침략적 전쟁도 있고 또는 진리의 사상 문제를 놓고 싸우는 전쟁도 있다.
이날까지의 역사적인 전쟁은 제국주의 정치적인 침략적 영토전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전쟁의 끝이 아니고 선과 악의 대립으로 아마겟돈 전쟁이 끝을 맺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최고도로 악화된 인류전멸이라는 비극을 가져 올 전쟁의 무력 완비를 이루게 된 것은 성서를 보아서 악한 인간이 자멸이라는 인류가 끝을 맺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 (계 16 : 14 - 16, 17 : 16).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온 세계인류가 한 시간에 불타게 되는 것을 진노의 병기로 온 땅을 멸하게 된다고 말씀한 종말의 큰 화가 된다 (사 13 : 4 - 5).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자를 들어서 악한 세상을 치고 불타서 망할 자를 하나님께서 없애는 재앙을 내리는 데는 당신의 백성을 절대 보호하여 남은 자가 되게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종말관의 끝이 되는 것이다 (계 15 : 1 - 4).
우리는 전쟁을 하되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도록 해준다는 것이 기독교의 종말론에 신앙의 요지가 된다 (계 19 : 19 - 21, 미 5 : 6 - 9). 전쟁은 사람의 맘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 아래서 환난이 오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계 17 : 17).
강 해 : 과거의 전쟁이라는 것은 영토전쟁이거든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정권을 쥐고 정치를 바로하니 영토가 넓어지고 머리가 나쁜 사람이 정권을 쥐면 영토가 좁아지고 그거란 말이요. 그러나 이번 전쟁이 나면 영토문제입니까 ? 전멸입니까 ? 세계인류가 몽땅 한 시간에 죽게 돼 있단 말이야요. 큰 문제요 ? 문제 아니요 ? 큰 문제거든. 그러면 세계인류가 한 시간에 싹 죽게 되는 것이 이제 오는 전쟁인데 그러면 이 전쟁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 것이냐 ? 이게 큰 난제입니다. 공산당과 싸우지 않자니 도둑놈이 안싸웁니까 ? 그러니 싸우자니 다 죽겠지, 안싸우자니 공산당이 자꾸 짓밟고 들어오지, 큰일이란 말이야요. 예 ? 큰일이죠 ?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싸우지 말자는 것이 지금 미국 정책이 아닙니까 ? 그럼 싸우지 말자 하고 나간다면 안싸우겠느냐 ? 안싸우지 못한단 말이야요. 그래서 성경본다면 이렇게 말씀했단 말이야. 하나님께서 인류종말에 가서 세계인류가 불탈 수 밖에 없는 전쟁이 나올 것을 미리 말씀했어요. 북방세력의 그 주의와 전략을 막을 자가 없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치는 역사로써 반드시 세계 통치할 것을 말했단 말이야요. 인간의 전쟁으로는 끝낼 수가 없을 때에 여호와 나타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반드시 전쟁이 끝나게 한다 그말이야요. 인간종말의 전쟁은 예수가 와서 끝마치겠다 그랬거든요. 세계가 불탈 수 밖에 없는 전쟁이 날 때 예수 온다 그랬습니다. 계시록 봐도 세계인류가 한 시간에 불타게 될 때 예수 온다 그랬구요, 이사야서도 그랬고 이건 어느 선지나 다 그랬어요. 세계인류가 한 시간에 불탈 수 밖에 없는 전쟁이 날 때는 예수가 올 때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가 안온다면 큰일이야요. 만일 1 차 세계대전 때에 예수가 왔다면 성경 거짓말입니다. 2 차 세계대전에 예수 와도 거짓말이고 인제 3 차 전쟁이 날 때에 예수 안오면 또 거짓말이야요. 1 차, 2 차 세계대전에는 예수가 왔다면 거짓말이요, 3 차 전쟁은 안오면 거짓말이야요. 인제 와야 돼요. 알아요 ? 인제 안오면 거짓말입니다. 3 차 전쟁은... |
정치라는 것은 침략적 정치도 있고 민주적인 정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민주라는 것으로만 정치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인심이 악화될 때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다수를 따르는 것이 현실의 소위 투표제도의 정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악자가 승리하는 다수라는 것은 오히려 악한 사상을 가진 자가 승리하는 정치 도구가 되고 말것이다(합 1 : 4).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부패된 사회의 종말은 포악한 자가 정치를 하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사 19 : 1 - 4) 이제 이것이 말세 정치난제라는 것이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잡아먹는 악화된 사회에 의인의 세력은 아무런 주권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심판기에 소위 망할 세상이라는 것이다 (합1 : 13 - 17).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통일의 세세왕권을 이룰 것을 말씀한 것이 기독교 역사에 종국을 짓는 지상왕국이다 ( 계 17 : 14 ).
이것은 아무리 적은 수라도 의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늘권세와 땅의권세를 주어서 인간의 정권이 그 앞에서 다 떨다가 망하게 될 것을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지상왕국이라고 하는 시온산 다윗왕국 성도의 통치시대라는것이다(사24:14-23).
모든 선지는 말세의 북방 정치가 극도로 강해서 인력으로서 그 세력을 당할 수 없는 난제가 올 때에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강림한다는 것을 말씀했으니(단 12 : 1 - 3) 성경대로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고 만민의 죄를 위하여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시고, 성경대로 승천하시고, 성경대로 온 세계인류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성경대로 이 세상을 심판하여 성경대로 이루어 지는 세계 의의 통치시대가 온다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의 정권은 사람의 자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장중에 있기 때문이다 (사 7장 - 9장).
강 해 : 정치난제인데 지금 정치난제란 뭐냐하면 이겁니다. 소위 민주정치라는 정치 아래 악한 사람이 정권을 쥐게 된다는 것입니다. 투표제도란 보시요. 인심이 악화되면 다수가 이깁니까 ? 소수가 이깁니까 ? 그러나 언제나 투표정치라는 것은 앞으로 불리합니다. 인심이 악화됨에 따라서 반드시 악한 사람이 다수고 옳은 사람이 아주 적은 수가 될 때 투표제도 정치라는 건 반드시 그건 악한 사람이 주권을 쥐게 돼 있는거란 말이야요. 그래서 이제 정치가 말이요. 전 이렇게 봅니다. 인간 정치로는 공산당 못막습니다. 우리 남한 정치하고 이북 정치 보면요 난 이북서 한 3, 4년 동안 정치를 받아 봤고 남한 나와 보니까요 남한 정치 가지고 공산정치와 못싸워요. 안됩니다 안돼요. 이런 정치 가지고는 안돼요. 절대로 안됩니다. 미국의 정치 가지고서 공산당과 싸울 수 있습니까 ? 예 ? 싸울 수 있어요 ? 못싸워요. 이거 공산당을 때려 부수려면 신정, 신정이 나와야 돼요. 마귀 정치가 공산당이니 하나님의 정치가 아니고는 공산당을 못이긴다 그말이요. 못이겨요. 그건 왜냐하면은 봐요, 만일 이북 정치는 이게 마귀왕의 정치인데 마귀왕. 그러면 내놓고 도둑질하는 정치와 붓대도둑놈의 정치와 싸우면 누가 못견디겠소 ? 예 ? 남한 붓대도둑놈 많지요 ? 요즘 내내 육군 장교들의 부정사건이 드러나지요 ? 그러면 도둑놈의 왕이 되는 정치와 군대안의 장교들이 붓대들고서 도둑질 해먹는 그렇찮아요 ? 그러니까 지금 남한 정치에 붓대도둑놈이 많이 있소 ? 없소 ? 예 ? 그럼 칼든 도둑놈과 붓대 든 도둑놈과 누가 못견뎌요 ? 예 ? 그러게 도둑놈은 다 도둑놈이야. 붓대로 해먹었던지 칼로 남을 죽이고 빼앗아 먹었던지 다 도둑놈이야요. 죄의 왕이 공산당인데 죄를 짓는 사람이 어떻게 싸울 수 있어요 ?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기를 인간종말에 북방의 악의 정치는 신과 같은 사람이 돼야 이긴다고 그랬어요. 북방이 아무리 강하지만 신과 같은 거룩한 사람이 이긴다. 북방은 섶나무가 될 것이고, 신의 거룩한 사람은 불꽃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게 이제는 여호와의 신으로 행하는 사람의 정치가 아니고는 절대로 공산당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알아요 ? 우리 나라가 이제 또 대통령 기한 차면 투표나 하는 정치 가지고서 북방과 싸울 수 있어요 ? 또 투표한다면 그 때 또 이북이 기회 타고 나올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그거요. 그저 국회의원들도 만날 그저 세력 다툼이야. 국회를 똑똑히 합니까 ? 못합니까 ? 이게 뭘 하는 것입니까 ? 공산당은 쇳덩이같이 뭉쳐서 만날 비밀회담을 하고 있는데 국회는 만날 싸움만 하면서 회의 처리를 못하고 있으니 이까짓게 맥 쳐요 ? 안되는거요. 도저히 안돼요.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북방의 정치를 인간이 막을 수 없을 때에 신정의 사람이 나온다 그랬어. 말 안들을 때는 신의 사람이 나와가지고서 세계통일한다 그랬습니다. 이제는 신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공산당을 물리치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
금일에 과학문명을 비롯하여 경제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옵 1 : 3 - 4). 그러나 경제가 경제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인 정권 아래 빈민의 쓰라림이라는 눈물의 호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경제 난제라 하는 것이다(사 3 : 13 - 15). 앞으로 이러한 기회를 엿보는 공산당은 세계인류를 허위선전으로써 미혹 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 (단 11 : 38 - 39). 배고픈 자에게 같이 먹게 한다는 간판 밑에서 자기 독재적인 정권 야욕을 가지고 세계통일을 꿈꾸는 그 세력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성경에 가르쳤기 때문이다 (단 11 : 43 - 45).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미신화 시키고 자기의 힘으로 경제를 해결한다는 교만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활동은 인간 자력에만 있다는 것은 한 공상에 불과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에 예언하기를 인류종말에 극도로 무서운 기근이 한재로 와서 모든 사람은 할 일이 없이 된다고 가르친 말씀이 있다 (사 19 : 5 - 10). 이 때에 특별보호하는 땅에서 물과 양식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 택민보호의 진리가 모든 선지서에 기록되었다 (사 25 : 4, 26 : 5 - 7, 33 : 10 - 24). 경제적으로 남을 압박하고 교만한 인간들은 다 망하고 말것을 가르쳤으니 앞으로의 경제는 특별 축복 속에서 보호받는 자 외에는 남지 못할 것을 분명히 가르쳤다 (사 23 : 18).
남은 자가 사는 새땅의 축복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시대의 지상축복을 가르쳤으니 경제난제 해결은 어디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사 60장).
강 해 : 경제난제라는 것이 지금 문제인데요. 과거에는 주먹이 천금이라 그랬습니다. 주먹만 튼튼하면 밥이야 못먹겠냐 그랬지만 오늘은 그 말이 경제에 맞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첫번에 나올 때는 정말 사람이 기계를 연구하는 여기에서 기계 하나만 연구하면 그 사람은 그게 자본이 됐습니다. 그래서 기계 연구하는 나라하고 양반하고 누가 못견뎌요 ? 예 ? 이 맹탱이같은 양반 말이야. 남은 딛다 기계를 만드는데 나막신을 신고서 떡 -- 도복 입고 나와 다니다가 비행기 날아가니까 '야, 귀신 봐라' 이런 양반들, 남은 비행기 타고 공중에 날아가는데 나막신 신고 도복 입고 앉아서 하늘에 비행기가 가니까 귀신 보라고. 이게 말이 됩니까 ? 그러니까 이것이 기계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부자 됐고 기계를 만들어서 남의 나라 보내는 사람의 나라가 부국이 됐습니다. 인제 또 큰 기계 또 나옵니다. 그래서 이놈의 큰 기계 사려면 돈이 있어야 사겠지요 ? 그래 돈 없으면 이젠 할 일이 있소 ? 예 ? 할 일이 없어요. 인제는 하다못해 새끼줄을 꽈먹어도 새끼도 못꽈먹어요. 큰 부자가 새끼공장 다 했어요. 인젠 새끼 대신에 나이론 줄이 나오고 말지요 ? 인젠 블럭도 못찍어 먹습니다. 큰 공장에서 블럭도 찍어내니 인젠, 하여간 뭐이든지 노동자가 해먹을게 없어요. 자, 그러면 결국에 가서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이냐 ? 그러면 돈이 많은 사람은 기계를 가지면 되는데 그렇게 되니까 이게 경제 난제라는거요 난제. 그래서 공산당은 말하기를 지금부터 40여년 전에 스탈린이 하는 소리가 그거 아닙니까 ? 그가 말하기를 앞으로 자본주의는 자동적으로 망한다 그랬단 말이야. 왜냐 ?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민주국가라는 이 나라는 공산주의 앞에 머리 숙이게 된다. 그래서 이 공산당은 미리 아예 기계를 국유화시켜서 전부 백성에게 기계를 주지 않아요. 땅을 주지 않아요. 전부 공산당이 맡아가지고서 자기네가 직접 다 해버리고 말아요. 그렇게 해가지고서 마지막에는 미국의 경쟁을 대항할 수 있으면 자기네가 승리한다 그랬거든요.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되고보니 돈 없는 사람은 눈이 멀찡 멀찡 해 앉아있고 돈 있는 사람은 잘 살면 그럼 멀찐 멀찐 앉았다가 배고파 죽을까 ? 무슨 일이 생길까요 ? 일이 생기거든요. 그래 지금 본다면 그거야요. 이 공산당 하는 일이 그겁니다. 이건 전부 농장도 개인에다 맡기면 안된다는거지, 시간 많이 간다는거야. 전부 이 국영농장을 해가지고서 기계로 밭을 갈고, 기계로 김을 메고, 기계로 그렇찮아요 ? 뭘해도 개인의 일이 없다는 거요. 전부 다 기계로 만들어서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 하는 말이 그겁니다. 앞으로 자연적 이렇게 미국은 개인의 공장으로써 백성을 지도하지만 우리는 국가의 공장으로써 백성을 지도한다 그래요. 저 땅은 공산당의 농장이지요 ? 저 땅의 기계는 말짝 공산당의 기계죠 ? 그 백성은 공산당의 이용물이야요. 일 많이 하면 밥 많이 주고 일 안하면 밥 안주고 조금하면 조금 줍니다. 이렇게 나가요. 이렇게 되는데 이래서 지금 본다면 경제 대국이 이렇게 될 때에 앞으로 가서 성경보면 바다의 물이 줄어들어 어족이 말라 죽고 백목을 짜던 사람이 천을 못 팔아먹고 이런 재앙이 반드시 온다고 그랬습니다. 자, 그렇게 온다면은 돈이 많은 사람은 그럭 저럭 그저 먹고 지내겠지마는 빈민들이 살 길이 있습니까 ? 예 ? 그 때는 무슨 난리가 나요 ? 안나요 ? 난리가 나죠. 마지막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앞으로 굶어 죽은 시체가 부지기수로 채우는데 특별 피난처에 하나님이 보호하는 백성 아니고는 살 수가 없을 것을 말했거든. 거긴 물과 양식을 공급하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비를 주고 오곡이 풍부하게 만들어서 적군이 못들어오게 보호해서 당신의 백성을 살릴 것을 말했단 말이야요. 자, 그러면 경제난제 해결은 공장이 해결합니까 ? 하나님이 해결합니까 ? 지금 같으면 공장이 해결하는 것 같지요 ? 공장, 그렇지요 ? 그러나 공장이 해결하는게 아냐. 하니님이 해결하는 거야. 지금 같다면 돈 많아 공장만 크게 지어놓으면 저 혼자 먹고 살것 같지요 ? 그게 아냐. 앞으로 경제 난제가 큰 문제입니다. 괜히 전 집사님 미국에 돈이나 벌라고 가지 마시오. 미국 가서 할 일이 있어요. 우리가 말세진리를 전해야지요 ? 전해서 미국의 성도를 깨우쳐서 그 사람들로 돈만 가지고 그러고 있지말고 돈을 쓸데다 바로 쓰자 그거야. 물질은 내일모래 부패할 것이니 이걸 가지고 성도를 살리는 운동을 해야지 앞으로 분명히 이 진리 통하여 열방의 재물이 동방으로 들어오는데 동방의 성도를 살리기 위해서 열방의 재물이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경제난제는 하나님 말씀으로 해결한다고 이미 성경에 말했습니다. 지금 경제난제라는 것은 아메리카 중심입니까 ? 지금 아시아 중심입니까 ? 아시아 중심 아니야요 ? 이 아시아 중심의 경제난제를 말했거든요. 선지들이 다 말하기를 아시아도 극동이라고 그랬거든요. |
인간들은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이요 (히 2 : 14 - 15), 또는 마귀 미혹은 무엇인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계 12 : 9). 무신론자는 마귀가 없다고 하지만 그 자체 심령이 미혹 당한 심령이라고 보게 된다 (계 13 : 2 - 6).
그러면 마귀의 근본과 종말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계신 조물주 외에 있는 신은 다 피조물의 신이니 마귀를 창조한 자는 조물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창 3 : 1, 계 20 : 2 - 3). 그러면 조물주께서 마귀를 창조한 동기가 무엇이며 장차 어떻게 하실 것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① 악한 마귀를 만들어서 쓰는 목적은 악을 이루자는 목적이 아니고 의를 이루자는 목적이니 의라는 것은 아무리 악한 마귀가 꾀여도 의로우신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는 것을 의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계 12 : 7 - 11).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아무런 시험이 없이 무조건 일반적으로 다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 진리가 아니요, 약속의 말씀을 인간에게 법으로 주는 동시에 그 말씀을 인간이 바로 믿고 지키지 못하도록 하는 마귀를 사용하여 악마의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는 자를 진실한 자라, 의로운 자라 인정을 하고 이 사람들로 영생의 기업을 상속케 하는 생명나무 열매와 생명강물을 마시면서 세세영광을 화려한 천국에서 길이 길이 누리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계 21 : 5 - 7).
② 현재에 인간이 마귀를 무서워하고 순종하는 것은 마귀의 종말를 모르고 마귀는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이 미혹받고 순종하다가 멸망을 마귀와 같이 당한다 (마 25 : 41). 마귀를 도구로 쓰는 조물주께서 완전한 영광의 나라의 수가 찰 때에 마귀를 없애는 동시에 마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고 순종하는 자를 없앤다는 것이 인류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계 14 : 9 - 11, 20 : 7 - 10).
강 해 : 앞으로 큰 문제가 마귀입니다. 마귀가 맘대로 나가 미혹해 보고 맘대로 해보라고 놔줬어요. 마귀를 갖다가 은혜시대에는 마귀권세 아래 빼앗긴 영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권세로써 마귀를 다 쫓아내는 이런 역사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마귀를 놔줘서 하나님의 종이고 자녀고 맘대로 가서 시험을 해보라는 것이 마귀시험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큰 문제는 마귀인데 그러면 이것은 마귀가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돼요. 여러분 기독교에서 마귀 비밀론과 종말을 똑똑히 모르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창조했지 천사타락이 마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옛뱀 간교한 뱀을 창조할 때에 이 놈이 지금 마귀가 되게 창조했는데 하나님을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하시기 위하여 마귀를 들어서 미혹을 시켜봤을 때에 아무리 미혹해도 하나님 말씀만 순종하는 사람만 복 주고 예 ? 에덴동산에서 마귀를 들어서 미혹해 볼 때에 아담, 하와는 순종을 했어요 ? 순종 안했어요 ? 그러면 이 땅이 망했지요 ? 그러면 인제에 아무리 마귀가 미혹을 해도 말씀을 절대 순종해 나가는 사람만 내 놓고 마귀의 말을 지킨 사람은 다 없앤다는 것이 심판이죠 ? 그래서 마귀가 아무리 강하게 들어와도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사람 피해를 못주게 돼 있습니다. 왜냐 ? 자, 하나님께서 마귀권세를 허락할 때에 말씀을 지키는 자는 피해를 못준다는 범위하에서 허락했으니 아무리 강하다 해도 말씀을 지키는 사람 피해 줄 수 있습니까 ? 마귀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요 ? 하나님이 들어쓰는 거요 ? 그러니까 우리는 말씀 하나 바로만 지키면 마귀권세는 아무것도 아니요. 그래서 한번 마귀를 놔 줬어요. |
인간이라는 것은 자본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격이 자본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못산다는 범위에서 국한된다는 것은 빛이 아니고 흑암이라고 본다 (사 5:8-14).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자본을 위하여 인생을 낸 것이 아니고 모든 만물을 인류에게 사용할 특권을 맡긴 것이니 인격이 자본을 따른다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가 아니다 (마 6:31-32).
인격이 자본을 지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될 것인데 현실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정치 아래서 남을 속이고 심지어 지도자까지도 뇌물을 받고 불의의 삯을 받고 심지어 위정적인 행동을 하여 백성의 피를 빤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망치는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미 7:3-6). 우리는 신의 축복이 자본이요, 축복속에서 준 자본을 인간 사회의 복리를 위하여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주의의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인격은 오히려 멸망의 자식이 될 것이다 (암 8:4-10).
강 해 : 이 인격이라는 것은 자본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못산다는 것인데 그 인격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는 것을 여기서 말했습니다. 그저 자본만 있으면 된다는 여기에서 돈 하나를 모으겠다는 여기에서 별아별 짓을 해서라도 돈을 모으면 된다는 그런 인격을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고 그래서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것을 정말 공산주의 같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자본주의라야지 하나님의 축복을 믿지 않고 내가 남을 속여서라도 돈을 모아본다는 그것은 멸망의 자식이라...! 그래서 옛날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도 다 자본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 자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본이됐는데, 그래서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의 롯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소돔 고모라가 이방에게 다 포로가 되고 롯을 빼앗길 그 때에 아브라함이가 가서 그 소돔 고모라에 있는 자기 조카를 구원하기 위하여 싸워 승리할 그 때에 적군이 가졌던 물건을 다 아브라함을 주니 나는 안 가지겠다고, 이걸 가진다면 모든 사람이 당신네가 준 자본으로 내가 잘산다고 분명히 그럴거니까 영광이 안 된다는 거야. 나는 하나님이 축복하면은 되는 것이니까 절대에 나는 이걸 안가지겠다고 그랬단 말이야. 그것이 진짜 진정한 인격이라는 거요. 하나님이 주면 나는 자본이 있고 하나님이 준 자본을 가지고서 나는 남을 살리기 위해서 이 자본을 사용한다. 이것이 진정한 인격을 가진 자본주의입니다. 양심을 속여서 거짓을 해서라도 돈을 모아야 된다는 것이라든지 또는 하나님 보다도 돈을 더 생각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 보다도 세상 자본을 더 중요시하고 이렇게 나가는 그 자본주의라는 것은 실지는 그것도 멸망의 자식이라 그말입니다. |
인생이라는 것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라는 것이 대자연을 창조한 신의 거룩한 뜻이니 이 원칙을 떠나서 어떤 자를 섬겨야만 살고 섬기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봉건이라는 것은 인류사회를 발전 차원보다도 오히려 개인적인 영리의 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 (사 10:1-3).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 외에 딴 것을 섬긴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될 것이니 봉건주의적인 사회라 하는 것은 인생을 노예화 시키는 폐단이 있게 되며 오히려 발전보다도 사람을 기계화 시키는 퇴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죄가 되고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우상이 되므로 망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사 31:1-4).
강 해 : 봉건주의라는 것은 그 인격을 우상화 시키는 동시에 이건 하나님과는 다 원수가 되는 이러한 그 인격이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을 섬겨야 살고 섬기지 않으면 그 사람 권리 아래 죽는다는 것. 섬기는 사람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남을 이렇게 억압하는 사람은 남을 착취한 압박하는 죄로 말미암아서 반드시 그건 망하는 거라 그말이야요. 이건 죄악의 세상이라 그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외에는 섬길이가 없다는 유일신 종교적인 사상이라야 발전을 가져오게 돼 있지 어떤 인물 하나가 나와서 주권을 쥐고 그 사람을 섬겨야만 그 나라가 살 수 있고 그 사람을 반대하면 하여튼 못산다는 그것이라는건 이건 사람이 다 노예가 되는 인격이 되고 만다는 말이야요. 다 이제 하나님만을 섬기려고 그래야지 하나님 외에 딴것을 섬기려는 것은 다 우상이 된다 그말입니다. |
우리는 먹기 위하여 사는 인생이 아니요, 살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다. 삶이라는 자체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 오늘의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짓밟고 빵으로만 산다는 주의에서 전 인류에게 하나같이 빵을 먹게 만든다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이룰 우려가 있다 (계 13:6-8).
공산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 축복을 받은 자가 물욕을 떠난 양심에서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에도 있어야 할 일이다 (행 4:32-35).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짓밟고 남을 죽이고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 먹자는 그 정신은 도둑의 정신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 북방에서 나오는 공산주의라는 것은 근본 사상이 사람을 동물화시키는 사상이니 이 주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짐승의 사상을 가지고 빵 한 조각을 위하여 움직이는 동물의 생활이 된다.
짐승을 먹이는 어떤 목장과 같이 한 사람이 먹이를 한데 모아놓고 때를 따라 먹이를 주는 식이 된다 (나 2:8-13). 짐승이 일만해도 아무런 삯을 받지않고 먹기만 하면 되는 식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하나같이 먹고 즐겁게 사는 것을 새 시대라고 보는 것이다 (슥 9:16-17).
강 해 : 공산이라는 것은 말 체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꼭 같이 먹자는 것. 그러나 그 정신사상이 바로 됐느냐 못됐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가 돼요.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부자가 돼 가지고서 자본이 많은 사람이 자기 혼자 먹을라 그러지 않고 자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가난한 사람같이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한다는 이거야 말로 참 이상적인 국가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빈민을 짓밟고 하나님의 축복을 미신화시키고 또 부자를 때려 없애고 죽이고 나눠먹자는 이런 정신 그 자체는 벌써 도둑이 되니까 이것은 배가 고픈 짐승이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그런 것에 불과하단 말이요. 그래서 그 공산주의 사상의 인격이라는 것은 사람이 한 동물성을 띠고마는 그런 폐단이 됩니다. 지금 저 북한에 가면 그저 일을 많이 하면 밥을 많이 주고, 적게 하면 적게 주고, 안하면 안주고 개인의 어떤 소망이나 어떤 활동을 절대에 주지않고 꼭 공산주의가 일 하라는 대로 일만 하면 된다는 그런 것은 절대에 사람의 사상이나 그 정신활동을 다 망가뜨리는 이러한 증거입니다. 평화통일의 합의가 성사됐다고 모두들 떠들어대지만 절대 이것은 내가 볼 때는요, 평화통일이 올 수 있습니까 ? 그건 안됩니다. 우리가 공산당을 따라가면야 되지요. 공산당 하자는 대로! 예 ? 그것은 내가 볼 때는 평화통일이라는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없어요. 공산주의와 우리와 싸우지 말고 지내보자는 그정도까지는 되겠지마는 어떻게 평화통일이 됩니까 ? 우리는 이제부터 싸우지 말고 너희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고 우리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면 우리는 자본주의 해서 살고 당신네는 공산주의 해서 살면서 우리 제발 싸우지 말고 이제부터는 피를 흘리지 말자 그렇게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 그런 정도는 되겠지만 평화통일이라 그럴 것 같으면 어떻게 통일을 가져올 겁니까 ? 우리 대통령의 말을 북한, 아니 공산당이 들어줄까요 ? 공산당을, 아니 우리 대통령(박정희)이 따라갈까요 ? 만일 공산당 하자는 대로 따라 할 바에는 그게 뭡니까 ? 그렇찮아요 ? 절대로 만일 평화통일로서 완전한 평화가 온다면 성경이 거짓말이죠 ? 맞아요 ? 그 필요 있습니까 ? 그건 안됩니다. 그러니까 그저 반공 반공하니까 다 좋다고. 반공 반공 하더니 또 평화 좋다고 그런다면 이 민족은 아무런 사상이 없는 바람에 불려가는 부평초같은 인간들이라 그말이야요. 그래서 절대에 공산주의 인격이란 그 자체는 유물론 사상이요, 하나님이 없다는 거요, 사람이 고등동물이라는 건데 절대 공산주의적인 사상이 들어가 놓으면 그 인격은 도저히 더 향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른게 아니요. 아무것도 없어요. 사람은 고등동물이라는 거야. 그저 잘 먹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거야. 그러니 "죄가 어딨냐?" 그거죠. "어디에 하나님 있냐?" 사람이 그저 먹고픈 대로 먹고 오늘이고 내일 모레고 그냥 죽어지면 그만인 사람이 된다면 하필이면 종교가 무슨 필요 있냐 ? 공산 사상이라는 자체는 그 인격이 동물성을 띤 인격이야요. 그래서 도저히 공산주의 인격 가지고서는 이거는 아무것도 못하게 돼 있습니다. |
피조물된 인간이 조물주를 모르고 자기밖에 없다는 것은 한 교만에 불과한 인격이니 예를들면 뚝배기가 토기장이가 필요없다는 식이다 (사 45:9). 이 사상이라는 것은 너무나 좁고 얕고 해서 자기 지식에 속은 인간이다 (사 47:10-11).
다시 말하자면 그릇이 좁은 데다가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는 것 같이 조갑지에 불과한 두뇌에다가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의 것을 담는다는 것은 바닷물을 조갑지에 담을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아(自我)를 찾되 자기의 인격적인 존재와 할 일을 바로 찾아서 신의 섭리를 신앙하는 인격을 부인하고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교만이라고 보게된다 (사 40:22).
강 해 : 인본주의 인격인데 인본주의라는 것은 자기 주관, 자기 아는 범위에서 판단하는 겁니다. 자기 생각에 맞으면 믿고 맞지 않으면은 부인하고 자기 외에는 더이상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요. 그것이 인격 중에는 아주 발전 못하는 인격입니다. 인본주의 인격이... 요런 사상은 목사 가운데서 제일 많아요. 말만 그 사람이 목사지, 자기 생각으로 다 판단해 버리거든. 그런 목사가 발전합니까 ? 내가 모르는 것은 좀 더 알아보려는 세계에 들어가야 이것이 발전하는 거요. 자꾸 우리는 내게 맞지 않더라도 내가 알 수 없는 거라도 알아보려고 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그런 주의에 진보가 되게 돼 있지, 자기 생각에 딱 맞으면 믿고 맞지 않으면 부인해 버린다는 것은 만날 자기대로만 믿을거 아닙니까 ? 그런 사람은 좁아요 ? 넓어요 ? 예 ? 아주 좁은 사람이라요. 그런 인격은 이건 아주 발전이 없어요. 안됩니다. 안되요. 우리 인생이라는 건 내가 혹 이해가 안되고 내가 믿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좀 깊이 알아보려고 하는 그런 가운데서 진보가 있게 돼 있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딱- 다 그냥 다 미신으로 돌려버리고 부인해 버린다면 그건 자기나 믿을거 아니냔 말이야요. 무슨 필요 있습니까 ? 그래 인본주의 인격 가지고는 도저히 아무것도 일 못하게 돼 있습니다. 발전을 못하게 돼 있어요. |
신비라는 것은 신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한 표적과 증거를 따라서 이것만으로 만족을 삼는 인격이니 이러한 자들은 마귀의 미혹을 벗어날 수 없는 인격이다. 왜냐하면 마귀도 얼마든지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 (계 13:13-15).
인간이 신비를 따른다는 것은 미신적인 종교의 생활이니 신앙이라는 자체는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고는 - 신비만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정로가 아니고 - 미로에서 헤매는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 (마 24:10-12). 예를 들면 술을 먹는 자가 맹목적으로 취하는 맛에 먹듯이 신비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마귀의 술을 먹는 행동이 될 것이다 (사 28:7-8).
신비를 부인할 수 없고 신비를 따르되 이것이 참 신에서 오는 것이냐 거짓 신에서 오는 것이냐는 것을 분별치 못한 신비주의는 가정을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 (사 8:20-22).
강 해 : 신비를 부인하면 인본주의가 되겠지만 신비란 자체가 그것이 합법적인 진리 안에서 내게 인격적으로 이뤄지는 신비 외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고 했다는 이것으로서 자기 흥미를 가진다는 건 이건 대단히 위험한 노선입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안에 그런 사람 많아요. 그저 환상을 본다. 계시를 본다. 입신을 한다. 이런 사람이 제일 많아요. 그럼 만날 입신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 그 무슨 필요 있소 ? 눈을 감고 드러누워서 죽었다 일어나는 무슨 필요가 있냐 말야 ? 그거, 그렇잖아요 ? 예 ? 그 필요가 있어요 ? 그래서 신비주의 인격이라는 것은 참된 발전을 가질 수 없고 한 광신적인 신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복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는 일이 아니요, 조물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찾는 방법이다 (롬 1:1-7).
조물주는 목적을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이니 그 목적을 인간 자력으로서는 달성할 수 없음을 보고 신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언약의 말씀을 사람에게 기록하도록 한 것이 기독교의 성경이다 (사 34:16)
그러므로 복음주의라는 것은 조물주의 예정하신 뜻을 믿되 자기 주관에 붙이지 않고 신의 완전성을 믿되 완전 계약의 말씀을 그대로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이다 (계 1:3, 22:6). 이렇게 할 때에 신은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신앙자에게 역사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조물주의 축복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받게 되어 영육이 아울러 완전한 신과 동행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기독교 복음주의라 하는 것이다 (계 21:3-6).
강 해 : 복음주의라는 것은 뭐냐하면은 복음은 하나님이 타락한 인생을 자기 힘으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해주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세우시고 그 언약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 역사라... 그래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이 하라는 법이 아니라 네가 할 수 없으나 내가 이렇게 해주겠다"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것이 기독교 복음이라는 것인데 그 복음주의라는게 뭐냐 ?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그 말씀대로 하나님 역사해서 나는 할 수 없는 그것을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복음주의라 그 말이야요. (새일성가 53장) 그런데는 아무리 내가 죄를 이길려고 해도 이길 수가 없었댔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믿으면 마음에 깨끗함을 주고, 평화를 주고, 완전히 내가 성결함을 주마. 그런 그 말씀이 있는데 예수를 믿었더니 내 맘이 인간성이 다 죽어버리고 죄가 생각도 나지 않고 평화롭고 깨끗해진단 말야.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한 그대로 내게 지혜가 오고, 능력이 오고, 권세가 오고, 새 힘이 오고, 축복이 오고, 보호가 있고, 이것을 체험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주의적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본문대로만 믿고 나가면 이것은 말세에 하나님이 해주실라는 말씀인데 그 말씀이 내 생활에 분명히 이뤄지는 것이요, 내 인격이 이뤄지는 것이요, 또는 이 세계가 이뤄지는 동시에 앞으로... 여러분 ! 늘 갖고 다닙니까 ? 더러 때놨다 갖고 다니는 겁니까 ? 예 ? 깨끗한 것은 늘 깨끗한거요 ? 이따금 저기다 붙여가지고 다닙니까 ? 그래 말씀에는 깨끗한게 늘 내게 깨끗해 있고 말씀에 은혜가 오는게 늘 은혜가 오고 그게 있음으로 계속으로 내게 기쁨과 평안과 만족이 항상 말씀대로 보존되니까 이것이 내 진리 체험이라 그거요. 아무리 내가 죽어서 천당을 가보고 입신해 천당을 갔다 왔다 하더라도 내 맘에 죄가 생기고 내 맘이 깨끗지 못하고 불만이 있고 골치가 덤덤하고 몸이 피곤하고 그것이 무슨 필요 있겠습니까 ? 그렇다면 필요 있습니까 ? 또 아무리 우리가 이상한 음성을 듣고 뭘 봤다 하더라도 내게 성경대로 내 중심에 성결과 평화가, 능력과 권세가 내게 이뤄지는 그 산 체험이 없다면 무슨 필요가 있으며 또는 이따만큼 이렇다 합시다, 엣다 오늘 아침에 불이 강하더라 그러면은 그것이 뜨겁기만 하지 다시는 내 것이 없어요. 그 뜨겁기는 뜨겁더라도 도로 맘이 복잡해지고 맘에 죄가 또 생기고 그런데 뜨겁다고만 떡- 그래요. 앗따 또 뜨겁더라. 작년 이맘 때에 뜨거워 보더니 오늘에 또 뜨거워 봤는데 야 좋다. 그런다고 그거 무슨 필요가 있냐 그거야... 또 한번은 생수가 온다고 머리는 시원해 봤습니다. 야, 오늘 아침에 참 시원하더라 그러고서는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몇달 있다 떡 - 야, 몇달 전에 시원하더니 또 시원하더라. 그 무슨 필요가 있냐 말이야요. 나는 그거요. 뜨거운 불이 오면 항상 이 맘이 뜨거워 있어 가지고 맘에 성결을 보존하고 생수가 머리에 내리니까 십년동안을 계속으로 내려 소성을 시키더니 그담에는 새힘으로 바꿔져 새힘이 항상 내게 들어와요 언제나. 아무리 내가 일해도 힘이 안들고 점점 몸이 강건해진단 말이야요. 좋소 ? 나쁩니까 ? 예 ? 이것이 복음적 인격이라는 거요. 알아요 ? 그래야지 어느 시간에는 은혜가 좀 있고 또 어느 시간에는 냉냉하다. 그렇다면 무슨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까 ? 언제는 힘을 좀 주더니 언제는 또 맥이 빠지게 만들더니 언제는 또 뜨겁게 만들더니 그 무슨 하나님이 그렇소 ? 그 말이 안돼요. 하나님은 깨끗하게 하면 계속으로 깨끗하게 하고 평화로우면 계속으로 평화롭게 하고 힘이 있으면 계속 힘이 있게 만들어야지 그것이 완전한 신의 역사 아니겠어요 ? 그렇소 ? 안그렇소 ? 예 ? 나뭇가지가 언제는 죽었다가 언제는 살아났다가 언제는 순이 나오다가 언제는 또 마르다가 그러면 그놈의 나뭇가지 쓰겠습니까 ? 써요 ? 그 어디 써요 ? 나의 체험은 그거야요. 계속으로 정상적으로 항상 계속되어 이뤄지는 그 체험을 내 가지고 있단 말이예요. 전 이걸 보지도 못해요.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내게 흘러온 그것이 계속 흘러와서 내 인격을 이룬다 말예요. 그래서 난 이 복음주의 인격을 이걸로 봅니다. 알겠습니까 ? 그래서 이거라야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인격이요, 이 인격이라야 새 시대 이룰 수 있는 인격이 아니겠습니까 ? 그렇잖아요 ? 우린 과학 초월이죠 ? 복음은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세계에서 과학적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해주마고 말씀한 것이 복음인데 이것을 믿는 자는 과학을 초월한 역사가 진리대로 와서 내 인격이 이뤄지는 이것이 복음주의 인격이라 그 말이예요. 인격은 그 주의에 의해 좌우가 되는데 첫째는 무슨 주의야요 ? 자본주의와 인격. 또 봉건주의와 인격. 공산주의와 인격. 신비주의와 인격. 인본주의와 인격. 복음주의와 인격. 그러면 복음주의의 인격이라야 이것은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 있지요 ? 그 인격이라야 최후에 승리를 이루고 새 시대를 이룰 수 있는 인격이요! |
인간들은 하나같이 경제적인 주권을 위하여 불철주야하고 노력하는 것이 그 생활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과학이 발달 되는데 따라서 경제적인 주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하고 화려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 황금만능을 부르짖고 있는 현실이다( 계 18 : 3 ).
그러나 인간 생활이 여기에 국한된 생활이라는 것은 완전한 열매를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미 6 : 10 - 12 ).
왜냐하면 누구나 다 이것을 위하여 싸우는 세상이니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고 또는 크게 실패를 하는 것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니 인간이 경제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라는 것은 큰 개가 고기 한 덩어리를 놓고 서로 싸우는데 불과한 생활이다. 인생의 참된 열매는 이것을 초월한 주권을 찾는 것이 존귀라고 볼 수 있다(마 6 : 33).
강 해 : 생활에 들어가서 경제주권이 없이는 사람은 못산다 그거야. 사람이 주권이 없으면 살 수가 있습니까 ? 무슨 주권이든 주권이 있어야지 그러나 자본주의 주권 아래 생활이라는 것은 완전한 생활이 아니라 그거요. 돈이 많으면 잘 살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못살고 돈이 많으면 사업도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못하고 그것이 원칙이죠 ? 그러나 그런 생활에만 국한돼 있다면 재앙의 날에 남을 수 있습니까 ? 안된단 말이야. 돈이 없어도 사업을 할 수 있고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는 것이 있지않다면 돈이 있으면 잘 살고 돈이 없으면 못살고 하는 그런데에 따라가는 생활이라는 것은 이 세상 물건 불타는 날에 탈거 아니겠습니까 ? 예 ? 그러니 우리 하나님의 사람이 돈이 있으면 일 하고 돈이 없으면 일을 못하고 돈이 있으면 잘 살고 돈이 없으면 잘 못산다면 그게 하나님의 사람이요 ? 돈의 사람이요 ? 돈의 사람이죠. 이런 인격가지고는 그런 생활 가지고는 도저히 앞으로 새시대 못갑니다. 안돼요. |
오늘의 소위 민주국가를 정당 정치라 한다. 당이라는 자체는 남을 살린다는 목적을 둔 것 보다도 남을 죽이는 일을 하고라도 자기의 정권을 내세운다는 것이 정치적인 야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주권에서 움직이는 생활은 자연적 무자비한 투쟁을 하는데 까지 이르게 될 때에 오히려 불행하게 가족전멸, 생활파탄을 이루고 마는 비참도 있게 된다. 이러므로 정당주권을 의지하고 사는 생활은 오히려 약자의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오히려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해서라도 자기의 위신과 명예를 얻어보려고 할 때에 양심을 떠난 생활에서 흑암이라는 세계를 영적으로 소유하게 된다. 남을 살리자는 목적에서 뭉쳐진 단체가 아니고는 다 흑암으로 본다( 계 13 : 10 ).
강 해 : 또 이 생활이 말이요, 정당주권에 매여서 산다 합시다. 자유당 시대에 자유당 했던 사람은 돈도 맘대로 쓰고 지위가 당당하고 자유당에 못들은 사람은 어디나 취직도 하기 어렵고 또 공화당이 만일 주권 쥐면 신민당은 아무것도 못해먹고 공화당으로만 해먹고 그게 민주주의입니까 ? 그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란 것은 정당은 민생을 위해서 수고하는 기관이야요. 만일 백성이 불리하게 되는 조건이 되면 정당에서 목숨 내놓고 싸워줘야 된단 말이야요. 그래서 이건 정당이라는건 백성의 자유를 보장시켜 주고 백성을 모든 옳은 방향으로 지도해 주기 위해서 정당정치라는 건 있어야 된단 말이죠. 왜 ? 한 정당이 독재로 하게되면 이건 안된다 말이요. 정당이 서로 다 협의해서 이렇게 해야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건데 아무리 공화당이 주권을 쥐었다 하더라도 신민당도 딱 그만큼 동등하게 모두 해나가게 해야 그것이 진짜 정당이지 이건 딱 그저 감투싸움이라. 우리 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요 ? 우리 나라 정치가 민주주의 정치가 됐습니까 ? 됐다고 봐요 ? 못됐다고 봐요 ? 이게 뭡니까 ? 맨날 싸움만 하고 그 무슨 도깨비 장난이야 ? 그건 말이 안된단 말이야. 정당은 그렇지 않습니까 ? 만일 정당주권에서 자기가 세력을 부려 보려면 그것이 정치인의 자격이 있소 ? 없소 ? 예 ? 그건 정치인의 자격이 아니야요. 그게 무슨 정치인입니까 ? 말이 안되는 거요. 그래서 정당주권 아래서 사는 생활이라는 것은 이게 아주 무가치한 생활이예요. 그 정당주권 아래서 잘 살다가 그 정당이 망하면 자기도 망하고 정당이 잘 되면 자기도 잘 되고 그게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 그렇찮아요 ? 그래서 이 정당주권의 생활이라는 것은 거기 매여 산다는 것은 무가치한 생활입니다. 안됩니다. |
교회라는 것은 소수가 하나님을 상대하여 기도로 뭉쳐진 교회가 될 때에 순수한 진리 안에서 신성을 이루는 가장 빛나는 교회라고 하던 때도 있었지만 교회가 확장되어 큰 주권을 쥘 수가 있는 단계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주권화 시키는 소위 교권이라는 것을 악용하게 될 때에 진리의 사람이 축출을 받고 하나님의 성신을 모독하는 일까지 있게 될 때에 신성한 예루살렘 교회가 바벨론에게 망한 사실이다. 또는 회회교에 중심지가 된 비극이나 말세에 신령한 교회가 음녀적인 협상주의로 들어가는 비극도 있게 되므로 교회의 주권을 악용하는 거짓선지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 모든 선지의 예언의 경고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진리 하나만을 바로 가르치되 진리의 주권을 잃지 않아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요二서 8 - 11 ). 그러므로 교회의 주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오히려 미운 물건이 될 수도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 도둑이기 때문이다( 요三서 9 - 10 ).
강 해 : 이 교회도 그래요. 교역자 생활이 그렇습니다. 교역자가 그 교권에 매여서 만일 움직이고 있다면 이런 무가치한 인간이 없단 말이야요. 이건 영권을 잡아가지고 하나님의 영권이 내게 와서 그 영권으로서 남을 바로 지도한다는건 교역자의 인격이지마는 이건 아무런 은혜는 없이 아무 역사도 없이 순 그놈의 교권을 가지고서 사람을 탄압을 하고 사람을 억압을 주고 이런다는 것은 이거 얼마나 무가치한 생활입니까 ? 그렇잖아요 ? 만일 어떤 목사님이 큰 교파 아래 있어서 그 교권 때문에 자기 할말을 못하고 그 교권 때문에 자기 주관을, 자기 할 일을 못하고 이렇게 눌려 나간다면 그건 교권에 속한 목사지 하늘에 속한 목사는 아니라 그말이야요. 그렇잖아요 ? 어느 교파의 교권이 강하다고 해서 그 앞에서 우리 벌벌 떨면서 우리가 진리에 좀 잘못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 교권 앞에 머리 숙인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종의 자격입니까 ? 난 그거요. 지금 아무리 장로교나 감리교의 교권들이 날 누른다 합시다. 교권이 날 누른다고 해서 내가 일 못하고, 교권이 날 밀어준다고 내가 일 한다면 나는 교권에 속한 목사지 하늘에 속한 목사는 아니란 말이야. 그래요 ? 안그래요 ? 예 ?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면 나홀로 빈 들판에 가 섰더라도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할 때에 교회가 될 수가 있소 ? 없소 ?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사람이지 이건 그 교파에서 원조를 받고 생활비를 받아먹고 그 교파에서 돈 갖다줘야 예배당을 짓고 거기서 갖다가 생활비를 얻고 그래가지고서 사업을 하고 있다면은 그건 교권에 속한 사람 되고 만단 말이야요. 안돼요. 그건 말이 안된단 말이야요. 선교사가 돈을 가지고서 나가서 역사하는 것이 원칙이요 ? 역사가 떨어지는 것이 원칙이요 ? 순 큰 교파에서 그 사람의 생활비를 주고 그 사람을 갖다 사업비를 줘서 내보내서 그 선교사를 통하여 무슨 역사는 떨어지지 않고 이 놈의 돈 때문에 가지고 나가서 자기 말 잘 들으면 돈을 그 뒤에 주고, 자기 말 안들으면 또 안주고 그런다면 그건 교권 선교사지 공중을 위한 선교사가 아니란 말이야요. 요즘 미국에서 나온 선교사들이 순 역사가 떨어져가지고 역사로서 되는 사람이 많소 ? 돈 가지고 하는 사람이 많소 ? 그 말이 안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선교사 밑에 가 있었거든요. 야, 이거 큰일났단말야. 순, 선교사들이 돈 가지고, 교권가지고 움직일라 그러거든요. 그러니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영권으로써 나가는 참 목사 별로 못봤습니다. 그 교권에 가면 교권에 매여서 거기서 꼼짝 못하고 지휘 받으면서 그저 이렇게 할라 그래요. 그런다면 이 교회가 무슨 교회냐 그말이야요. 교회라는 건 환난이 오고 핍박이 온다 해도 영권으로 이기고 나가게 되는 교회가 돼야 종이 돼야 이것이 앞으로 환난날에 남지않겠냐 그말이야요. 알아요 ? 그래서 우리는 교역자 생활이 교권에 매여있는 그 생활이 된다면 이건 환난날에 다 죽습니다. 다 죽어요. 꼼짝 못하고 죽어요. 바리새 교회가 그것이 영권이 있는 교회요 ? 순, 교권에 있는거요 ? 순, 교권이 아닙니까 ? 그렇지 않습니까 ? 우리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교회인 동시에 우리는 그 말씀 하나 바로 전하기 위해 목숨바치고 싸울 것 뿐이요. 그 밖에는 하나님이 그 교회를 다스리게 돼야지, 내가 뭐이게 이래라 좌지 우지 할 권리가 있습니까 ? 그렇잖아요 ? 이거 분명히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 교역자가 교권 울타리에 매인 교역자냐 ? 직접 하늘에 영권을 받은 교역자냐 ? 이것이 문제야요. 목사라도. |
참된 자유는 시민된 주권을 바로 찾고 움직이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고 한다. 참된 민주주의라는 것은 시민주권의 생활이 향상 될 때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성립된다.( 딤전 2 : 1 - 2 ). 백성은 개인적인 인격 하나를 바로 찾아 적은데서부터 큰 것에 이르는 것을 질서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당주권이 강하다 해도 시민주권 앞에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니 정당주권자가 시민을 억압하거나 또는 이용을 한다면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시민이 양심 사상이 바로 선 인격을 소유하는데서부터가 모든 인류가 복리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니 시민의 주권을 바로 찾을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과학적인 교훈으로만은 불가능하고 양심과 사상을 살려주는 참된 진리의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사 3 : 8 ).
왜냐할 때에 진리라는 것은 양심과 사상을 부활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딤전 1 : 5 ). 시민의 인격은 도덕에 있지 않고 진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 안에서 개인적인 인격을 소유한데서 이상적인 부부가 이뤄지고( 엡 5 : 22 - 33 ) 이상적인 부부가 근본된 가정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게 됨으로 시민권을 바로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인격을 출생케 하는 것이다( 엡 6 : 4 ).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는 영웅이라 하더라도 근본이 바로 선 가정에서부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민의 주권이 경제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는 것은 흙과 같이 흩어질 것이로되 진리로 뭉쳐진 가정으로써 이뤄진 사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강철같이 강해질 수가 있다( 미 4 : 13 ).
강 해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민주권을 옹호해줍니까 ? 안해줍니까 ?순, 하나님 나라가 시민주권 생활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만일 시민주권을 바로 찾는 국민이 아니면 그 국민으로 이뤄진 나라는 이것은 흙같이 무른거야요. 돈 따라가는 국민이란 그 사람의 그 나라는 그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 그래서 우리는 이거요. 우리 새시대 건설에는 시민주권 하나 바로 찾을 수 있는 인격 하나 만드는 것 큰일로 봐야죠 ? 그래요 ? 안그래요 ? 사람 많이 모이는게 우리 새시대 건설이요 ? 시민주권 하나 바로 찾는 사람 만들어 놓는게 우리 새시대 건설이요 ? 만일 공산당과 싸우는 국가에서 정객들이 백성의 시민주권 하나 바로 찾을 수 있는 사람 하나를 만드는 그 운동이 없다면 이건 흙과 같이 무른 정치라 그말이야요. 자, 보시요. 대통령이 평화라는 거짓에다 거짓을 하니까 또 거짓평화를 다 평화라 그래요. 이거 대통령이 또 이북에 가서 평화조약 어떻게 그런다면 그건 나는 우스운 인간이라고 봐요. 아무리 대통령이 평화 평화 하더라도 평화의 가능성이 없다면 우리 시민에서는 그걸 안된다고 그래야죠 ? 그렇소 ? 안그렇소 ? 예 ? 그렇지요 ? 아니, 반공 하라니까 또 반공 반공 해요 그런다면 그것은 아무런 시민주권이 없는 사람들이라 그말이야요. 아무리 나는 대통령이 한말이라도 이것이 안될 건 안된다고 말해야지 이것이 시민주권이지 대통령은 누가 냅니까 ? 시민주권으로 낸 대통령이 아니야요 ? 그래서 오늘에 이 남한의 백성이, 그런 시민주권을 찾는 여기에서 반공이냐 ? 뭣 때문인지 모르고서 반공 반공하고 따라가는 반공이야 ? 그것을 보면 안단 말이야요. 예 ? 그래서 난 그겁니다. 공산당은 사상으로 나왔으면은 반공사상, 멸공사상으로써 인격 하나 만드는 것을 제일 크게 안다 난 이렇게 말할거요. 그래서 우리가 새시대가 이뤄지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려면은 목사님이라도 시민 하나를 바로 만들고 어머니라도 시민 하나를 바로 만드는 어머니가 돼야지, 내 품안에 있는 내 자식을 새시대의 시민권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어머니가 돼야죠 ? 그런 기도가 있어야죠 ? 그렇소 ? 안그렇소? 아들 딸 많이 낳았다고 해서 어머니가 다한거야요. 새시대 갈 수 있는 시민 하나를 만들어 놓는 어머니가 돼야 됩니까 ? 예 ? 아들을 아무리 여나문 낳았다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 그곳에 갈 똑똑한 시민권 찾아야지. 그게 똑똑한 어머니 아닙니까 ? 그러니까 내가 죽을 먹더라도 그거요. 여기서 우리가 무장을 해가지고 내려가서 대부흥사가 되는 것도 좋겠지마는 시민 하나를 바로 깨우쳐서 사상을 바로 가지도록, 바로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런 우리 어머니가 됐다면 그 어머니를 통해서 새시대 이뤄질 것 아닙니까 ? 그렇지 않소 ? 큰일 하겠다고 그러지 말라고. 큰일은 다른게 아니야. 원자탄이 빵빵 떨어져도 죽지않고 살 사람 하나 만들어 놓는 사람이 큰일이지 그거 뭐 헌금이나 많이 내게하고 사람 많이 모을라면 극장 차려놓지. 사람 많이 모였다고 부흥이 아니야요. 과연 그 지도자가 그 사람이 앞으로 새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 시민권을 가지도록 하는 지도자냐 ? 그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 그래서 우리는 천국시민, 새시대의 시민,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그 시민권 하나 바로 가지는 이것이 즉, 큰일이라 그거요. 어떻게 다 가졌어요 ? 예 ? 가졌어요 ? 왜 대답을 안해요 ? 적어도 우리가 말한마디 한다면 하나님이 들어줘야지 그렇잖아요 ? 우리 여기와서 나 하나가 천국의 시민권 하나 바로 가지라고 ? 우리 말이라면 하나님이 다 들어준다면은 그게 훌륭한 역사지요 ? 그렇찮아요 ? 그럼 그렇게 돼야 공산당을 이기고 그렇게 돼야 반드시 새시대를 이루지 그게 없다면 백날 교회 무슨 소용이 있어 ? 목사 밥먹이는 직업소입니까 ?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 그렇잖아요 ? |
성도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도덕이나 의식이나 문학이나 과학을 초월한 세계에서 활동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골 3 : 1 - 3 ). 그러므로 성도의 주권이라는 것은 하늘에 속한 주권이니 이것을 빼앗을 자는 전혀 없다( 롬 8 : 31 - 39 ). 이 주권은 하나님이 움직여 주는 것이니 아무리 소수라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주권이다( 단 7 : 18 - 22 ).
그러므로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강했지만 3, 4 인의 청년 앞에 머리를 숙이었고 아무리 세계인류가 다 대적한다 해도 이상적인 새로운 시대를 정복할 주권은 성도에게 있다. 이러한 주권을 가진 생활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3 대 요소가 있다.
① 하나님의 비밀을 전부 아는 지식에서 움직이는 생활이다( 빌 3: 8 - 12 ). 이 생활이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고 약해 보이지만 최후의 승리를 가져오는 열매를 보게 된다( 사 41 : 8 - 20 ).
② 영적으로 사는 생활이다. 영이라는 것은 최고의 인격을 이루는 데에서만 활동하는 세계를 말한다. 왜냐할때에 조물주는 사람을 움직일 때에 영을 통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 58 : 10 ). 인간이 육으로만 사는 인간이 있고, 두뇌로 사는 인간도 있고, 영으로 사는 인간도 있으니 영적활동이 있을 때에 두뇌도 몸도 바로 움직이는 것을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요三서 2절 ).
③ 능력에 속한 생활이다. 이 생활은 능력을 믿는 생활만이 아니고 친히 받아서 능력의 힘에 이끌리어 행하는 것을 말한다( 골 1 : 29 ). 인간들은 물질의 힘이나 사람의 권력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이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신의 능력을 받아서 움직이는 자는 역사적으로 심히 적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류종말의 끝을 맺는 것은 능력의 사람으로서 새시대를 이루는 승리를 볼 것이니 성도의 주권이 완전한 승리를 보게 된다는 것이 성서의 결론을 짓는 진리가 된다( 계 2 : 25 - 27 ).
강 해 : 성도의 주권과 생활인데 성도의 주권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이것은 즉, 누가 다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성도의 주권을 들어줍니까 ? 안들어줍니까 ? 예 ?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 기도 들어주게 돼야죠 ? 그 조물주 하나님 우리가 기도하면 들어준다면 그 주권이 당당하지요 ? "여호와여 !" 그러면 "왜 !" "여호와여 !" 그러면 "오냐 !" 대답해 주는 거란 말이야. 이게 성도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가 됐지마는 성도의 주권을 상실하지 않은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 앞에는 느브갓네살이 절 했소 ? 절 안했소 ? 절 했단 말이야. 안할 수가 있대요. ? 풀무불에 들어가도 기뻐 뜁니까 ? 안뜁니까 ? 자, 느브갓네살이 주권이 더 강합니까 ? 풀무불에도 타지않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주권이 더 강합니까 ? 그러니까 바벨론 왕이 옳다고 하면서 혼이 빠져 절하고 말았단 말이야. 별수가 없어요. 이것이 성도의 주권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이 새시대를 이룰 주권을 성도의 주권이라. 여기 다니엘서도 본다면 인간종말에 가서 4 대 강국이 나오지마는 그러면 성도가 나라를 얻으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어드런 사람이냐 할 것 같으면 여기 성도 주권에. 첫째 : 그 시대의 비밀을 바로 안다 그말이야요. 주권이라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비밀을 바로 알기 전에는 주권이 있습니까 ? 그렇잖아요 ? 그렇소 ? 안그렇소 ? 노아 홍수심판 때 홍수비밀을 바로 아는 노아가 주권이 있소 없소 ? 주권이 있단 말이야. 그렇잖아요 ? 이스라엘이 망할 때 그 때에 아무리 압박과 천대 받았지마는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주권이 있소 ? 없소 ? 예레미야 말대로 망했단 말이야. 황폐됐단 말이야. 그러니까 먼저 우리는 성도 주권은 그때 그때 비밀을 아는거요. 예루살렘 거리에 바리새 교인이 왕래하고 대제사장, 교법사, 유사, 장로가 딱딱거리며 야단치지마는 십자가의 비밀을 바로 아는 베드로가 주권이 있었소 ? 그 대제사장이 주권이 있었소 ? 예 ? 누가 이겼소 ? 베드로가 이겼어. 그렇지 않습니까 ? 바울을 염병같은 이단이라 정죄했지마는 실지는 바울이 주권이 있소 ? 이단이라 정죄하는 유대교가 주권이 있소 ? 바울이 주권이 있는 것 아니요 ? 바울이가 승리 했으니까. 그러면 오늘에 와서도 말세비밀을 아는 사람이 주권이 있어요 ? 말세비밀 모르고 반대하는 사람이 주권이 있어요 ? 벌써 이 사람에게 주권이 왔어요. 이 사람 주권 누가 다치질 못해요. 알아요 ? 이 사람 주권 가진 사람입니다. 나와 한번 지내보시요. 괜찮소. 빈민굴에서 엎드려 기도하다가 이 시대의 비밀은 몽땅 다 내게 알려주기로 결재가 났다니 내가 주권이 있소 ? 없소 ? 있지않소 ? 아무리 누더기 옷을 입고 보리밥 정말 양쌀밥을 먹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지마는 주권이 내게 왔단 말이야요. 내가 아무리 지겟군이지마는 주권이 내게 왔습니다. 꼼짝 못합니다. 괜히 나 다치단 큰일납니다. 둘째 : 영으로 사는 사람이라 그거요. 영으로 사는 사람, 사람이 세 가지인데 몸뚱이 힘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뇌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고 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단 말이요. 자, 그러면 몸뚱이가 아무리 돌덩이 같아도 뇌를 쓰는게 부족하다면 뇌를 쓰는 사람에게 견딥니까 ? 못견딥니까 ?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힘이 약한 사람이 뇌를 쓰는 그런 사람에게 못견뎌요. 그렇지 않습니까 ? 그저 몸뚱이로만 움직이는 사람은 정신작용으로 바로 움직이는 사람한테 굴복을 당하게 됐고 정신작용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영으로 움직이는 사람한테 굴복을 당하게 돼 있단 말이요. 그러게 우리 영권이 있어야지요. 그렇잖아요 ? 그러니까 사람은 성도의 주권이 영권이야요. 영권, 영으로 움직이는 거야. 강단에서 정신작용으로 설교하는 사람과 영으로 설교하는 사람은 누가 대중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 영으로 말하는 사람이요. 학적으로 웅변으로 해도 정신작용으로 나서서 지식으로 말하는 사람과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리 학적이 없고 웅변이 없다고 해도 정말 최봉석 목사님 말처럼 그저 예수 천당해도 거기에 역사가 있어요. 그래서 78 개 교회 세운 최봉석 목사는 말재간이 아주 없어요. 학교에 두번씩 자꾸 불러도 시험을 못쳤답니다. 그래도 그 양반이 한국에서 교회를 제일 많이 세웠고 역사가 제일 컷단 말이야요. 신학교서 자, 합격은 못하고 시험은 못쳤어도 그렇잖아요 ? 그래서 성도의 주권은 영에 있다. 반드시 영에 있다 그말이야요. 셋째 : 성도의 주권은 능력이라.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능력을 받은 생활이라 이거야.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십니다. 무소불능의 능력을 받아야 되는거요. 받아야지요. 그래서 그 시대의 비밀을 아는 것이 성도의 주권이고 영으로 움직이는 것이 성도의 주권이요, 능력을 받아서 능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성도의 주권이라. 이 주권으로만이 새시대를 이룰 수 있는 주권이라 그말이야요. 요즘 요시대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까 ? 영으로 움직이는 사람 많이 있어요 ? 능력으로 움직이는 사람 많이 있어요 예 ? 주권을 찾아보구려. 이렇게 꼭 돼야죠 ? 예 ? 우리가 이 시대 비밀 분명히 알아야지요 ? 영으로 움직여야지요 ? 능력을 받아야지요 ? 그렇잖아요 ? 이건 신학교에 가보니까 신학교는 순 정신작용의 신학교지 영의 신학교가 아닙니다. 나가서 별짓 다하고 돌아다니는 놈이 시험은 제일 잘쳤고 제일 1등을 하는데요. 100점을 맞는데요. 그렇잖아요 ? 그러면 영의 신학교요 ? 정신작용의 신학교요 ? 안되는거요. 그래서 성도의 주권은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그 시대 시대에 비밀을 알은 주권이요, 영으로 움직이는 주권이요, 능력으로 움직이는 주권이야. 이것으로만이 앞으로 승리하고 성도의 나라가 이뤄진다 그말이요. |
인간이라는 것은 누구나 무엇을 요구하는 것만은 없는 자가 없다. 그러나 그 요구라는 것은 각각 다르되 어떠한 요구를 가져야 인간종말의 끝을 바로 맺을 것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을 지혜라 하는 것이다.
이제 요구와 종말에 대하여 구분을 짓는다면 다음과 같이 볼 수가 있다.
① 식물 세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소리없이 찾고있는 수분에 따라오는 질소, 인산, 가리일 것이다. 이것을 찾기 위하여 식물의 뿌리는 어디든지 깊이 세포적인 세력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 힘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에 의하여 모든 동물계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주고 있다( 창 1 : 29 ).
② 동물계에서 찾고있는 요구는 먹을것을 찾되 식물에서 활동하는 열매를 찾고있다. 이것은 먹으면 살고 안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 먹을 수도 있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러한 세계에서만 움직인다는 것은 결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볼 때에 오히려 동물보다도 비극을 가져온다는 것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하여 죄를 짓고 죄의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악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사 3 : 9 ). 그러므로 이러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애는 것이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암 9 : 8 ). 우리는 무엇을 구하므로써 결말을 바로 맺을 것이냐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 45 : 6 - 7 )
오늘의 많은 종교가 있지만은 인간의 요구와 종말을 바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이 소위 미신적인 종교라 하는 것이다( 사 44 : 9 - 20 ). 미신이라는 것은 결말을 똑똑히 모르고 덮어놓고 구하는 것을 가르쳤다. 기도라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을 바로 찾지 못하면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일도 있다. 기도라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이것은 동물은 가질 수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종교성이란 것이다( 행 17 : 22 - 26 ).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찾아 보는데서 이루어진 종교도 있고 조물주께서 인생을 긍휼히 보고 친히 인생에게 무엇을 구하든지 준다는 사랑에서 어떠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구하면 된다는 법을 가르친 것을 기독교 진리의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는 이 진리대로 순종하는 생활에서 구할 때에 신앙자로서 직접 응답을 받게되는 것을 참된 종교인의 산 체험이라는 것이다( 요一서 5 : 14 - 15 ). 만일 신께서 말씀한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면 심판은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거짓이 있는 신이 의로운 심판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참된 요구는 진리에 따라 구하는 것이요 결과는 약속의 말씀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루어 줄 것이니 이것을 아름다운 새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사 49 : 8 - 13 ).
강 해 : 인간의 요구와 종말인데, 자 이게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대뜸 완전하게 낸 것이 아니고 구하는대로 더 주겠다는 것을 요걸 약속한 것인데요 대뜸 완전하게 낸다면 이건 안돼요.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사람을 내서 네가 내게 의심없이 구하면은 내가 네게 더 준다는 이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물을 낼 때는 식물은 땅 속에 있는 질소, 인산, 가리를 잡아 당길 수 있는 기능을 식물에게다 줬단 말이야요. 우리 진리를 탐구할 때에 나무 뿌리가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듯 파고 들어가면 영계가 올라가요 ? 못올라가요 ? 예 ? 참 잘 파고 들어가지요 ? 어떻게 그놈의 세포적인 그 가는 뿌리가 땅 속에 그렇게 그 세차게 들어가 줄을 뻗어내냐 말이요. 그만큼만 우리가 진리를 파고 들어가서 잡아당기는 그런 기도가 있다면 그야말로 굉장하죠. 그래서 예수님이 뭐랬소 ? 나는 포도나무 그루터기라 그랬지요 ? 그래서 그 열매를 맺음으로 식물을 낼 적에 식물은 땅 속에 있는 그 진액을 잡아당기는 그 힘을 그에게 줘서 그놈이 잡아당겨서 열매를 맺어 놓으면은 그것을 사람이 먹고 살게 된다는 것이요. 동물들도 먹고 살게 냈다 그말이야요. 그러면 우리가 그 열매를 따먹고 또 그 열매를 먹기 위해서 수고하라고 낸거요 ? 열매를 먹고 딴걸 또 받으라는거요 ? 예 ? 그래 요즘 사람들이 기껀 열매를 따먹고 또 그놈의 열매를 따다 먹기 위해 거기다 정신 다 쏟아내거든. 사과를 따먹고 사과나무에다 비료를 주고 김메고 또 주고, 따먹고 또 주고 그게 무슨 가치가 있냐 그거야. 그렇게 낸게 아니거든. 그 열매를 먹고서 너는 내게 순종하면 내가 네게다 지혜를 주마, 능력을 주마, 권세를 주마, 이렇게 낸건데 이건 만날 그거란 말야. 가치가 있습니까 ? 그렇다면은 동물만도 못하다 그말이요. 동물 농사합니까 ? 공중에 나는 새가 농사해서 먹고 살아요 ? 이산 저산 날아다니는 백학이 얼마나 팔자가 좋습니까 ? 노자돈 없이도 비행기 타고 다닙니다. 편리해요 ? 편리치 않아요 ? 예 ? 사람은 그 비행기 좀 타려면 뭐 웽 웽 그래야 나가는거요. 이산 저산 날아다니는 새들은 돈이 없어도 비행기 잘 타고, 농사는 안해도 잘 먹고, 어장 안하고도 생선만 먹고 날아 다닙니다. 그러면 그놈이 지옥 갑니까 ? 지옥 안가요. 그러나 사람은 기껀 농사해서 고놈의 것 먹다가 지옥 가게 된다면 그 사람이 백구, 흰두루미만 못하다 이거요. 무슨 가치가 있냐 그말이야요. 예 ? 그래서 나는 예수 믿기 전에 인생의 가치가 뭐냐 하는 것을 고민했어요. 꾀꼬리를 볼 때에 너는 나보다 낫구나. 흰두루미를 볼 때에 나보다 낫구나. 인생은 무슨 가치가 있느냐 ? 저 그러다 예수 믿었습니다마는. 나부터도 밥 먹고 또 강단에 서고, 밥 먹고 강단에 서고 이거로만 왔다 갔다 한다면 밥먹는 목사요 ? 은혜의 목사요 ? 예 ? 교회에서 생활비 주면 잔뜩 먹고 강단에 서고, 먹고 또 강단에 서고, 하늘에서 내려오는게 없다면 그 목사는 무슨 목사요 ? 먹기 위한 목사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 그래서 사람을 낼 때에 너는 열매를 먹는 것은 자연계가 해 줄 것이니 이걸 먹고 너는 나를 공경하고 나를 순종해서 내가 주는 지혜를 받고, 내가 주는 능력을 받고, 내가 주는 은총을 받아서 살라는 것이 사람인데 그러면 이렇게 되지를 못했단 말야. 자, 여러분들은 어디 이 땅에서 지금 하늘의 것 받소 ? 저는 이 강단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내 배로 지금 영양이 막 들어옵니다. 이리로도 새힘이 내립니다. 자, 얼마나 좋소. 나도 만일 이걸 받지 못한다면 삯꾼 목사가 되고마는거요. 별수 있습니까 ? 위에서 은혜 안주면 삯꾼이요 ? 삯꾼아니요 ? 예 ? 무슨 가치가 있냐 그거요.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요구와 종말을 바로 알아야 된다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식물을 낼 때에 식물은 땅 속에 있는 질소, 인산, 가리를 흡수해서 열매를 맺으라고 냈고 사람은 그걸 따먹고 하나님께로부터 진액을 많이 받아서 변화승천하라는 것입니다. 알아요 ? 그게 사람이란 말이요. 그렇게 돼야 이것이 인생의 가치를 발휘하는거 아니겠습니까 ? 자, 인제는 이 인간론에 대해서는 대강 말했는데 이 종합적으로 제가 인제 말씀할테니까니 여러분이 인간론이라는 건 언제나 상식화 돼야 됩니다. 인간을 낼적에 몇가지로 냈다고요 ? 세 가지로 냈단 말이요. 예 ? 그래서 이 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을 때에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자란 말이야요. 모든 전부를 하나님이 몸에다 주기 위해서 낸 것이라 그말이죠. 사람에게 정신작용을 준것은 이것은 얼마든지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라고 준것이요, 사람의 영을 준것은 하나님과 교통 받아서 하늘에서 오는 지혜를, 능력을, 권세를 받고 하나님의 친구로서 너는 나와 같이 사귀자는 그걸로 줬단 말이야. 그것이 사람이란 말이요. 사람인데 사람이 타락했다 그거요. 첫째는 질적 타락이라. 선악과를 먹고나니까 그 불순종의 죄로 이 몸에 타락인데 몸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은 그 몸에서 악한 씨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질적 타락이야요. 사람은 하나님의 경륜을 의심하고 뱀의 말을 듣고 따라가니 그것이 지식 타락이라 그말입니다. 지식 타락이야요. 기능의 타락이야요. 우리가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야 되는데 인간이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산다는 건 이건 타락이야요. 또 종교 타락인데 하나님이 종교를 준 것은 종교를 통하여 네가 내 앞에 얼마든지 제사만 하면은 네게다 얼마든지 주마는거요. 아무리 더러워도 깨끗해지겠고 네가 아무리 약해도 능력을 주겠고 그런데 종교를 자기 정욕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니 그만 종교 타락이 됐단 말이야요. 도덕 타락이야. 도덕이라는 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기에서 부부를 이루고 사회를 이루라고 했는데 하나님 경외하지 않는 부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회가 될 때에 도덕이 부패되는 여기에서 결국은 이렇게 됐다. 그러니까 사람이 질적으로 타락했고, 지식으로 타락했고, 또는 기능으로 타락된 동시에 뭐이 타락했소 ? 종교가 타락됐어. 종교가 타락하는 동시에 도덕까지 타락됐다. 이것이 오늘 사회라 그말이야요. 그러면 이거를 부득불 향상시키는 방법은 인제는 타락한 인생이 그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서 피 흘리고 싸우는 그러한 그 생활이 없어서는 안되게 됐단 말이예요. 그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부터 겟세마네 동산 골고다를 거쳐서 싸우는 생활로 나가는 여기에서 예수가 우리 인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개척의 새로운 길을 열었단 말이요.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그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나가면 다 향상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도저히 향상할 수가 없단 말이죠. 이래서 이것으로만이 우리가 향상하는 거란 말이요. 향상하는데는 이건 지식의 향상이라 그거야. 우리는 과학적 지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작용의 지식을 가지고 머물 것이 아니고 영적 지식을 배워 올라가고 거기다가 사용하는 그 지식이 된다면은 얼마든지 우리가 향상할 수가 있다 그말이야요. 오늘의 목사님들이 정신작용의 지식을 가지고 영적 지식을 무시하죠 ? 망합니까 ? 안망합니까 ? 예 ? 그것이 망하는거란 말이야. 그게 망하는게 아니겠습니까 ? 또 기능의 향상인데는 우리는 중생을 거쳐서 자, 중생 받은 사람은 얼마든지 하나님께 능력 받을 권리가 있소 ? 없소 ? 예 ? 주님 구름 타고 승천하기 전에 뭐라 그랬소 ? 뭘 받아요 ? 성신권능 받아가지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돼라 그랬지요 ? 예 ? 그러면 그것이 우리 지금 향상인데 아니, 고기를 잡아먹던 베드로, 예수님 세번씩 모른다던 베드로가 성신권능을 받아놓으니까 향상 했소 ? 안했소 ? 참 이거. 중생만 받은 사람이라면은 얼마든지 우리는 구할 수가 있단 말이야. 종교 발전은 뭐냐할 때에 원시적인 양심적인 종교에서 즉, 민족적인 종교로, 민족적인 종교에서 세계적인 종교로, 세계적인 종교로서 완전히 지상왕국 이뤄지는 것으로 종교는 끝을 맺는다 그말이야요. 그러면 오늘에 민족적인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됐는데 이 세계적인 종교가 이제 유물론이 되고 말아야 됩니까 ? 지상왕국 이뤄야 됩니까 ? 지상왕국 이뤄지는 이것이 즉, 종교발전이라는 거야요. 알겠습니까 ? 도덕향상인데 도덕향상은 뭐냐할 것 같으면 우리는 인제에 도덕적인 부부가 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으로서 우리가 그 도덕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이상적인 사회가 된다 그말이야요. 도덕을 위한 도덕이라는 건 타락하지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이라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 축복 속에서 발전해서 앞으로 도덕적인 인류의 참된 평화를 가질 수 있는 그 사회를 도덕으로 이룰 수 있다. 이게 향상이죠 ? 그렇찮아요 ? 알겠습니까 ? 자, 그러면 그 다음에 난제 해결이죠 ? 오늘의 난제는 뭐이 난제냐. 천당가는 사람의 난제요 ? 새시대가는 사람의 난제요 ? 새시대 갈 사람에게 난제가 왔다 그말입니다. 왜냐 ? 평등을 부르짖는 기독교에 민주적인 복음운동이 세계를 기독화 민주화 시키는 여기에서 오늘의 교회가 오히려 부패했어요. 기독교 종교국의 정치가 부패해지고 인심이 악화되니 그 민주란 민주가 선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상이 민주인데 이것이 마귀도구가 됐단 말이요 민주가. 그렇게 됐소 ? 안됐소 ? 그러니 이것이 큰 문제야요. 이것을 심판이라 그거요. 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 안에서 살지않고 그 자유를 악용하는 부패가 오니 꽝 꽝 쳐부셔 ! 왜 ? 또 다시 아들 보내 또 십자가에 또 죽일까 ? 예 ? 또 죽여요 ? 이건 때려부숴야지요 ? 이게 심판이라는 거야요. 이것이 지금 시국난제라는 것입니다. 사상난제야 하나님이 없다, 기독교룰 미신화 시키고 하나님 말씀을 짓밟고 하나님 말씀은 아편에 불과하다는 이 사상을 가진 공산당이 세계 인류를 한시간에 불살라 버릴 수 있는 무기를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협상을 해야지요 ? 예 ? 협상하려면 공산사상을 지지해서 다 받아들이고 말아야지요 ? 예? 야단났지요 ? 자, 공산당과 사상 싸움하자니 이길수는 없지 타협하면 하나님이 죽이겠다지 야단났단 말이야. 자, 공산당은 다 자기 사상 숭배 안하면 우릴 죽이겠다고 나오지, 하나님은 자기 사상대로 안하면 심판하겠다지 야단 아닙니까 ? 이것이 사상난제라는 거야.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 사상대로 나간다면은 하나님이 심판하는 날에 남아요 ? 안남아요 ? 남지요. 사 상심판이야요. 사상 하나 보자고 해서 공산당 사상 내보냈습니다. 공산당 사상 이렇게 강하게 나가도 너 이 사상에 굴복하겠느냐 ? 내 사상을 따르겠느냐 ? 이래서 마귀사상을 내보낸 거야요. 알아요 ? 천하가 다 뭐래도 사상을 지켜야 인정받는거요. 그렇잖아요 ? 무슨 난제야요 ? 사상난제. 그다음엔 전쟁난제. 그 전은 영토전쟁이거든. 머리가 좋은 사람이 정치 잘 하면은 영토가 넓어졌어. 그다음은 좁아졌다 넓어졌다 자, 자, 그건 전쟁은 재미요 ? 재미 아니요 ? 예 ? 재미죠 ? 한번 좀 사람이 세상에 났다가 머리가 좋으면 한번 땅을 넓직이 차지하고 에헴 이렇게 하면 내가 천왕이다, 내가 진시왕이다. 이놈들 ! 에헴 하면 그것도 영웅 아닙니까 ? 그래서 영토가 넓어진 정치한 사람을 영웅이라 그랬습니다. 그랬지요 ? 그것은 과거를 본다면 한 흥미에 불과한 전쟁이예요. 그러나 이제 전쟁 한다면 너 죽고, 나 죽고, 다 죽어요. 자, 한시간이면 세계 인류는 다 죽어. 큰 문제란 말이요. 사람의 힘으로 전쟁을 그만 둘 수도 없지, 할 수도 없지, 그거 아니요 ? 큰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어느 선지나 세계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한시간에 불타는 전쟁이니 거기서 구원을 받을려면 하나님의 특별보호를 받아야 된다. 하나님이 '이렇게 보호하마' 그거란 말이야요. 그러니까 지금 전쟁난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음으로라야 해결된다는 거요. 그래서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는 이것이 진짜 진리지요 ? 정치난제야요. 민주정치란 투표정치가 민주정치인데 오늘 자꾸 인심이 악화되니 민주 경찰이 사람 구실을 합니까 ? 못합니까 ? 알아줘요 ? 개똥같이 알아요. 오히려 경찰을 이용하려고 그래요. 그러니 이 민주정치라는 이 정치에서 자, 극도로 지금 인심이 악화되고 이렇게 되니 여기서 어찌 할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치를 바로 못하는 이때에 다시 신정적인 정치라야 이젠 된다는 것이 성경이야요. 민주정치의 세력이 부패해서 악한 세력에게 짓밟히게 되니 신정이 나와서 악의 세력 때려 없애고서 다윗왕국이 세상에 이뤄진다. 이제 민주정치가 극도로 부패한 것은 신정이 나올 증거라 그말이야요. 그말이죠 ? 그래서 인간 지식으로서 말하는 것은 미혹행위다 그말이야요. 알겠습니까 ? 그것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왜냐 ? 자, 유물론이 다 마귀에 속했습니까 ? 하나님께 속했습니까 ? 세상사람이 다 어디 속했어요 ? 예 ? 다 마귀에게 속했어요. 그러니까 유물론 마귀에게 속한 사람한테 배우는 그것은 마귀자식이지 하나님 자식이 아니야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배운 지식이라야 진짜 인생관의 진리를 바로 알게 돼 있지 사람한테 배운 지식이라는 건 과학적 지식 배우는 겁니다. 인생관에 대한 지식을 사람에게 배운다는 건 말이 안돼요. 대학의 종교과 연구하는 목사라는 사람이 와서 여기 왔다 가더니 그 사람 책을 낸 걸 보니까 이런 인간들이 정말 교수가 됐다는 것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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