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라기 2장
제목:제사장 부패
유다가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을 했고, 후에 성곽을 건축할 때 유대 교회는 극도로 부패하여 결국 성전 문은 닫히고 말았다(말 1:10~14).
본 장(章)의 내용은 아무리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오히려 그 복을 저주로 돌리신다는 것이다. 계 5:9~10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순종하여야 한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마음이 없음:1~2
『1 너의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절:“이같이 명령하노라”고 하신 말씀은 말 1:6~14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제사장들이 마땅히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되이 하여야 한다는 명령이다. 이런 명령이 있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순종치도 않으며 마음에 두지도 않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비는 바 복(福)을 주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주를 내리겠다 하신다.
●2절:“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 그들의 순종치 않는 결과로 벌써 저주 받은 일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그들의 빈 바 복(福)을 주시지 않고 저주를 받도록 하시는 것이 앞으로 더욱 심하여진다는 뜻이 본 절에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실 때에 단 번에 다 내리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나 끝날 재앙이 나리는 날에는 누구도 그 벌을 돌이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간 재앙이 쌓여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그는 자비(慈悲)하셔서 긴 시간을 참으심으로 죄인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시려는 것이다(벧후 3:9).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여호와의 꾸짖는 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간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 정도(正道)를 떠나 언약을 파함:3~9
『3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9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3절:“종자(種子)”라는 말은 원어로 팔(arm)이라고 번역이 된다. 그렇다면 팔을 견책한다는 것은 제사장들의 종교적 활동(팔은 일하는 것이니)을 열매 없이 만들겠다는 뜻이다(제사장은 농사를 못하니 종자(씨)를 견책함은 제사장의 일을 저해하겠다는 뜻이다).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 유대 교회가 지키는 절기에 제물로 가져온 각종 가축 곧 소나 양의 똥을 그 때에 활동하던 제사장들의 얼굴에 바른다는 것이니, 수치스럽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현재도 하나님의 새 일 역사에 순종치 않고 예배하면 북방 칼에 붙여 수치를 당케 하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종 된 자들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부끄러운 일(똥이 얼굴에 발리움)을 당하게 된다.
신 32:28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우매(愚昧)를 책망하셨다.
●4~5절: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 때까지 하셨던 명령(1:6 ~ 2:3)의 목적을 밝힌다. 그 목적은 다음과 같은 것이니 곧 “레위와 세운 당신의 언약”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레위지파는 제사장 족속인데 특별히 그의 자손 중 아론을 상대로 하여 언약을 맺으셨다(대상 6:49). 곧 그 언약은 하나님 백성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이었으니, 이 제사 행위가 참되이 존속하려면 제사장들이 그 일을 진실되이 하여야 된다. 이 제사 행위는 그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속죄함을 받게 함에 따라 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을 가리켜 5절 말씀에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도 하셨다.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 곧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제사 담당의 직책을 주신 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아론을 위시하여 충성된 제사장은 그대로 순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제사장과 제사가 모두 극도로 부패하니 성전 문을 닫아야 되겠다는 말씀이다.
●6절:참된 제사장의 입에는 “진리의 법”, 곧 하나님의 율법을 바로 가르치는 것이 있고, 그 생활도 경건하여 백성에게 불의한 교훈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제사장들은 “화평과 정직”, 곧 하나님 앞에서 평화의 관계와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그 사역을 실행하여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켰다.
●7절:제사장의 입에 진리의 법이 있어야 할 이유로서는, 사람들이 거기서 율법을 찾아 얻을 수 있어야 하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사장의 입술에 진리의 지식이 파수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 그 윗절에 있는 말씀, 곧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된다” 함의 이유이다.
●8절:“정도(正道)에서 떠나” -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이 원본적(原本的)인 제사장의 행동원리에서 이탈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도리어 율법을 범하게 만들었다.
●9절:“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다” 함은 그들이 율법을 해석할 때에나 혹은 시행함에 있어서 가난한 자에게는 가혹하게 하고 부자에게는 순하게 하는 불공정성을 나타내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실상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것을 이렇게도 이용하고 저렇게도 이용한 것이니, 결국 하나님을 멸시한 행동이었다.
종말인 지금, 강단에 선 종들이 예언서를 무시하고 성경은 해석할 탓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이런 제사장들을 벌하는 의미에서 그들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케 하시겠다고 하신다(9절 하반절).
하나님은 말씀을 “때에 따라” 주셨는데도 새 언약과 새 일을 가르치지도, 아니 아예 분별치도 못하고 오히려 새 일을 가르치는 종을 이단시하니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멸시한 유대 교회를 심판(마3:10~12)하셨듯이, 또 종말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심판의 말씀인 새 일(사 42:9, 43:19)을 이단시하는 피로 산 은혜 시대 종들을 북방 칼에 붙여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벧전 4:17절에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하셨다(사 43:28, 66:6). 과거에는 ‘유대의 율법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하나님의 집’은 어디인가...? ☞ 계 10:11~ “다시 예언”의 의미를 깨달으라!
3. 형제에게 궤사를 행함: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우리는 다 하나님이 지은 자녀이니 형제에게 궤사를 행한다 함은 가증한 일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니 참 자녀라면 조금도 궤사가 있을 수 없다.
“한 아버지”라는 말은 하나님을 가리킨다. “열조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기타 족장들로 더불어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할 것을 약속하심이다(출 19:5~6, 24:8).
4. 성결을 욕되게 하고 타협함:11~14
『11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방과 타협하는 일이 있다면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지고 만다. 이와 같이 된 자는 제 아무리 울음과 탄식으로 나아온다 하여도 하나님은 도저히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성도에겐 구별된 삶, 절대 성결한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11절:"궤사를 행함", "가증한 일을 행함", "성결을 욕되게 함" - 모두다 같은 내용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즉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함”을 가리킨다. ‘이방 신의 딸’이라는 말은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인의 딸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오늘날로 볼 때,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기독교 협상운동」이다.
단 11:39 “그는 이방 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취할 것이요...” 여기서 “그”는 북방 공산당 소련이다.
●12절:“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 - 곧 이방 여자를 취하는 자를 가리킨다. 오늘로 말하면 종교적으로 「협상운동」을 하는 W.C.C.에 속한 음녀교회들이다(계 17:1~18).
계 17:3~ “내가 보니 여자(교회)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이 여자는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고, :16~“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셨다.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 - 그 죄악을 능동적(能動的)으로 선도(先導)하는 자와, 또는 피동적(被動的)으로 그 지도에 따르는 자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죄악에 참여하는 무리 전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둘 다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버리시겠다고 하신다.
“제사드리는 자” - 이방 여자를 취하는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기 위해 제사드리는 자를 가리킨다. 즉 이방 사상을 용납(우상의 산당 세움)하던 솔로몬같이 행하는 자이다. 무신론 공산주의는 종말의 우상인데, 세계 교회는 W.C.C.에 동참하는 중에 있으니 심판의 대상이 된다. 이스라엘은 구별이 되어야 하고(신 7:6, 14:2, 렘 2:3, 시 114:2), 이방 여자를 취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출 34:16, 신 7:3, 스 9:12).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시며 변치 않으시는 분이시고 식언치 않으시는(민 23:19) 공의(公義)의 신이시니 표면적인 구약 때와 같이 이면적인 신약 종말에도 심판의 기준은 동일할 것이다. 따라서 예언서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며 종말을 사는 우리는 다시 예언해야 하는 것이다(계 10:11). 따라서 오늘날의 교회(음녀)가 이방 신의 딸인 공산주의 정권(사상)과 협상하는 것은 「영적 음행」이니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약 4:4). 공산사상은 무신론으로 요엘서에 등장하는 '한 이족(異族)'이다(욜 1:6). 공산권과 교묘히 연합된 W.C.C. 산하 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진보 신학 사상으로 행하고 있는데 이는 변질, 탈선된 길로서 음행의 길이다.
심판기는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때이다. 하나님은 계 18:4~ “내 백성아 거기(바벨=북방무신론사상=이방사상)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셨는데(사 48:20, 52:11, 렘 51:6, 45, 슥 2:6, 고전 10:21, 고후 6:17), 인간들은 인위적인 판단으로 바벨론 정치, 종교와 협상을 하니 성경에 크게 위배되는 일이다. 마치 하와가 간교한 뱀과 협상함과 같은 일이다. 하나님은 협상하면서 예배드리는 자를 용서치 않으신다(사 1:13, 61:8, 잠 15:8).
●13절:“이런 일도 행하나니” - 본처(本妻)로 하여금 눈물겨운 이혼을 당케 하는 일을 말한다.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 그 버림받은 아내들이 하나님의 제단 앞에 가서 눈물을 많이 흘리므로 그 눈물이 제단을 가리울 정도라는 뜻이다.
●14절:“어찜이니이까” -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물(獻物)을 돌아보시지 않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이는 그들이 어려서 취한 아내(본처)를 버린 까닭이라 한다. 그들의 본처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고 취한 아내이니 그를 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배반하는 죄악이다(창 31:49~50, 마 19:6, 잠 2:17).
“궤사를 행하도다” - 이혼한다는 뜻이다.
5. 하나님은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15~16
『15 여호와는 영이 유여(有餘)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 하와의 창조 > |
하나님께서 영을 지으신 것은 경건한 자손을 얻고저 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이혼”과 “학대” 이 두 가지이니 절대 양심을 지켜서 진실하여야 할 것이다.
●15절:“영이 유여(有餘)하다” - 영이 부족하지 않고 충만함을 이름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성립시킬 영을 얼마든지 창조하실 수 있었으나 그는 최초에 일남 일녀(一男一女)를 지어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셨다(창 2:24, 마 19:4~6). 그가 일남 일녀를 지으신 목적은 그들이 단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본문에 ‘하나’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둘이 합하여 하나 된다는 의미에서의 하나이다. 부부가 서로 갈리지 않고 하나됨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일수록 그것은 하나님 창조질서에 더욱 합치되는 일이다. 일남 일녀가 한 몸을 이루는데 있어서 형식뿐이 아닌, 그 내용에 있어서 참되이 화합하여 일치할수록, 거기서 나는 자손이 경건하다는 의미를 오늘 본문은 가르친다.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 아내로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배반하지 말라는 뜻이다.
●16절:“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 - 남을 학대하는 죄악이 너무도 만연하여 그 악(학대)이 마치 옷이 몸을 가리우고 있는 것처럼 그의 전인격(全人格)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이혼하는 자는 바로 그렇게 큰 학대를 그 아내에게 행하는 것이다. 15절에 이어 다시 한 번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하고 당부하셨다.
6.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함: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行惡)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公義)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하나님 자녀의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는 다 배도적인 행동이 될 것이니 저주를 받게 된다. 언제나 부패된 자들은 저희들이 범하는 죄악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 죄를 범하였다. 그리하면서도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이 여호와를 괴롭게 한 죄가 무엇임을 지적한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오해함」이다. 즉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말로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시지 않는 분이라고 판단한 것은 그들의 오판이다. 하나님은 당신에 대한 우리의 오해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받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당신이 사명을 맡긴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며 입술이 부정하여 진실치 아니한 종은 버리고야 만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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